건물 가득 우아한 멋을 뿜어내는 140년 전통의 헤리티지
말레이시아 여행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쿠알라룸푸르를 제외한 도시의 호텔 최신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도(=아내도) 도시별 호텔을 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무사히 잘 다녀온 만큼 머물렀던 숙소를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호텔은 말레이시아의 대표 미식 도시 페낭에서 머물렀던 만족도 최상급 5성 호텔 '이스턴&오리엔털(Estern & Oriental, 이하 E&O)'이다.
E&O 호텔은 188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벌써 140여 년이 된 호텔이다. 그럼에도 낡은 느낌은 전혀 없다. 페낭의 눈부신 햇살을 받아 호텔 외관부터 밝고 클래식한 우아함을 뿜어낸다. 보름 넘게 쿠알라룸푸르 레지던스에 머물다 와서인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호텔이 주는 고풍스러운 아우라에 입이 벌어졌다.
E&O 호텔은 조지타운 중심에서 도보거리로 떨어진 오션뷰 입지에 있다. 주요 관광지인 블루맨션도 도보 5분 거리에 있고 호텔 길 건너에는 별점 높은 레스토랑 거리가 이어져 있어서 식사와 관광 접근성이 높다. 우린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 덕분에(?) 그랩택시를 타고 다녔지만 도보 관광이 매력인 조지타운 입지로 딱이었다.
무엇보다 E&O호텔은 모든 객실이 스위트룸이다. 일반 객실보다 확실히 크고 드레스룸과 화장실도, 은빛의 수전도 고급스럽다. 룸 테라스로 나가면 눈과 코가 뻥 뚫리는 바다가 펼쳐진다. 침대맡에 툭 올려진 호텔맵은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오래된 공간 속을 유랑하고 싶게 만든다.
우린 구관인 헤리티지 윙이 아닌 신관 빅토리 아넥스에 머물렀는데, 객실에 따라 사용하는 수영장은 구분된다. (헤리티지 윙 풀은 1층, 빅토리 아넥스 풀은 6층) 룸 구경을 끝내고 빅토리 아넥스 전용 인피니티풀에 들렀는데 수영장 분위기에 반해 그대로 외출 일정을 미루고 아들과 물에 뛰어들었다. 신전처럼 세워진 기둥 아래 바다와 맞닿은 듯 이어진 인피니티풀엔 일광욕을 즐기는 서양인 노부부 몇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정말 수영할 '맛'이 났다. 다만 아들과 둘 다 수영팬츠 하나만 입고 며칠을 놀았더니 얼굴은 물론 어깨와 등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피트니스 클럽은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기구도 다양하고 타월과 물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러닝머신이 줄지어진 창 바깥으로 오션뷰가 펼쳐져 있어 더 매력적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전날 만찬도 소화시킬 겸 호텔 피트니스는 꼭 하는 편인데, 클래식하고 멋진 풍광 덕분에 3박 내내 아침마다 기분 좋게 운동을 했다.
호텔 1층에 있는 조식 레스토랑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출국 전 예습 삼아 백종원의 스트리트푸드파이터 페낭 편을 보고 왔지만, 아들과 에어컨 없는 노점 맛집을 다니는 건 쉽지 않은데 이곳 조식 레스토랑의 수많은 메뉴들이 미식 여행을 대신해 줬다. 호텔 조식의 전형적인 메뉴들은 물론 가벼운 카야토스트부터 아삼락싸, 차퀘티아우, 나시칸다르 등 페낭 대표 음식을 포스 넘치는 요리사에게 주문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테라스 바깥 테이블은 바다로 바로 이어져 있는데 그늘 아래라 덥지 않은 자리에서 바다를 보며 매일 아침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고 해변 길을 걸었다.
호텔은 높지 않고 가로로 긴 형태로 되어 있는데, 지나는 통로마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곳곳마다 비치된 체어에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될 것 같은 포인트가 즐비해서 눈이 호강스러웠다. 외출하다 잠시 쉬고, 식사하고 잠시 쉬고, 괜히 돌아다니다 잠시 쉬고 해도 시간이 간다. 정말 잘 간다. 페낭 도시 여행 시간을 줄일 정도로 호텔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가 머문 스튜디오 트윈 스위트룸은 성인 2명, 아이 1명으로 조식을 포함해 1박 기준 20만 원 수준이다. 정말 가격 대비 최상의 만족도였고, 말레이시아 여행 동안 레지던스와 3곳의 호텔에 머물렀지만 휴식과 힐링으로 최고의 숙소라 말하고 싶다. 이곳의 머무는 것 자체가 페낭 여행 만족의 7할 이상이었다.
E&O 호텔에 있는 동안, 아내와 아침 식사 때마다 양가 부모님 모시고 오고 싶단 말을 입버릇 처럼 했다. 페낭 여행보다, 호텔을 떠나기가 아쉬워서 기념품 숍을 계속 서성거렸다. 페낭은 아직 직항이 없는 것 같지만 이 호텔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페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