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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목적 없이 걸어보자

by 기공메자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이려 한다. 하루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계획 없는 시간은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지만 모든 걸음에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만 할까.


산책을 떠올려 본다. 어떤 산책은 운동을 위해,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나선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발길이 가는 대로 걷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나뭇잎, 귓가를 스치는 바람, 낯선 길모퉁이의 풍경들. 그런 순간에는 세상이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흘러간다.


나는 2019년 11월 11일, 그저 평범한 출근길의 한복판에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을 맞았다. 점심 도중 갑작스레 어지러움이 밀려왔고, 병원으로 실려 간 나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은 내 인생의 멈춤표였다.


수술대 위에서의 7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13일의 입원과 회복,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체중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근육은 빠져 몸은 버거웠다. 이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살기 위해, 다시 서기 위해, 나는 걸어야 했다.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걷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다리 힘이 빠져 수없이 주저앉았지만,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갔다. 1시간, 2시간, 때로는 3시간을 걸었다. 그 걸음은 회복이자 기도였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의식이었다.


걷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삶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멈춰야 할 때 멈추고, 쉬어야 할 때 쉬는 것도 방향의 일부였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았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이, 오히려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매일의 글쓰기와 산책을 루틴으로 삼았다. 계획이 없던 하루가 오히려 내 삶을 회복시켰다. 의미를 찾기보다 순간을 느끼는 것이 더 큰 배움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삶의 목적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자기 인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무의미한 시간’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무의미 속에서 오히려 진짜 자신이 깨어난다. 그 시간은 내면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자,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삶에는 반드시 목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러나 모든 날이 그런 건 아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그 길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숨결을, 그리고 진짜 행복의 방향을 찾는다. 오늘 하루, 목적 없이 걸어보자. 그 길 끝에서 당신은 어느새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결국, 목적 없는 걸음이 인생의 진짜 목적을 가르쳐 준다.


<블로그 이웃의 공감 댓글>

저도 휴직후 정처없이 떠돈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료하고 집에 있기 답답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그 길위에서 참 많은 것을 만났습니다. 천천히 기어가는 사슴벌레, 꼬물꼬물 열을 맞춰 이동하는 개미군단 하늘하늘 피어나는 풀꽃, 여울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우연히 들린 정자에서 고구마를 내어주면 말을 걸어 오시는 할머니, 산중턱 평상에서 만나 수다를 떤 휴가온 아저씨, 길위에 생명이 있고 따뜻한 인정이 있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전 지금도 아무 생각없이 즐겨 걷습니다. 작가님 말씀처럼 사는데 꼭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그냥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작가의 답글>

정말 마음 따뜻해지는 말씀을 주셨네요. 길 위에서 마주한 생명들, 사람들, 그리고 인연들, 그 모든 순간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이었겠지요. “그냥 그냥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이다”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따뜻하고 자유로운 걸음길 되시길 응원드립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밤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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