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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알려준 단순한 진리

by 기공메자

<작가의 생각 한 줄>

“자연은 늘 제 속도대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쌓아두며 그 흐름을 방해하곤 한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스며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아무런 의도도 욕심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비춘다.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멀리 산의 능선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소양강변의 강물도 묵묵히 흘러 바다를 향하고, 나무는 계절이 오면 잎을 내고 계절이 가면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모든 것이 자연스레 흘러간다. 집착도, 저항도 없이.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와 다르다. 집 안 곳곳에 채워 넣은 물건들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옷장 속에는 몇 해째 손길조차 가지 않는 옷들이 있고, 서랍에는 언제 쓸지 모르는 도구와 수집품들이 잠들어 있다.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못한 메모가 겹겹이 쌓이고, 마음속에는 쓸모없는 걱정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과잉’이다.


자연은 불필요한 것을 붙잡지 않는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선택이자 다음 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놓기보다 쌓아두는 데 익숙하다. 더 많이 소유해야 안전하다고 믿으며 빈자리가 생기면 금세 무언가로 채워 넣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이 묻혀 버린다.


지난 여름 농장에서 잡초를 매다 문득 깨달았다. 밭에 불필요한 풀을 뽑아내면 그 자리에 심은 작물이 더 잘 자란다. 인생도 그렇다.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내야 내 안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이 숨 쉴 수 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자연의 이치를 옮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한다. 옷장은 수시로 정리하고 쓰지 않는 도구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책상 위는 하루를 마치기 전 반드시 정리한다. 무엇보다 마음속 걱정과 불필요한 비교를 내려놓으려 한다. 걱정의 절반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비교의 대부분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덜어냄은 단순히 공간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마음의 결을 정돈하는 과정이며, 삶의 방향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머릿속에 남은 미완의 과제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가족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할 때도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잡념과 불안은 마음의 잡초와 같아서 허공에 영양분을 뺏고 삶의 뿌리를 야위게 만든다.


소방관으로 살아온 36년 동안 지독한 긴장 속에서 살았다. 생의 현장에서 마주한 혼란은 언제나 즉각적인 판단과 행동을 요구했다. 그 속에서 배운 것은 ‘본질만 남겨라’라는 원칙이었다. 무전기 소리, 불꽃, 연기, 사람들의 울음소리 속에서도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만 선택해야 했다. 그 훈련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 퇴직 후 농장에서 흙을 만지며, 그때 배웠던 원칙이 자연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처럼 사는 법은 멀리 있지 않다. 강물처럼 흘러가고, 나무처럼 내려놓으며, 계절처럼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매일 저녁 아내와 함께 소양강변을 걷거나 인터벌 러닝을 하며 물결을 바라본다. 한 번 흐른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자리에는 늘 새로운 물이 흐른다.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오늘의 몸짓과 오늘의 선택을 믿으며 흘러가는 것. 필요 이상의 것을 덜어내고 본질만 남겨 단순하지만 충만하게. 자연은 서두르지 않고 그럼에도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그 진리를 닮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삶의 태도일 것이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자연은 우리에게 “더 가지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필요한 만큼 주고, 불필요한 것은 내려놓으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덜어낼 때 보이고, 내려놓을 때 채울 수 있으며, 단순해질 때 깊어진다. 오늘 당신이 비운 작은 한 조각이 내일 더 건강하게 자라날 뿌리가 되길 바란다.


<이웃의 공감 댓글>

자연처럼 살아간다는 말이 이렇게 깊게 와닿을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더 가지려 애쓰지만, 정작 마음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잎을 내려놓는 나무처럼, 한 번 흐르면 돌아오지 않는 강물처럼 저도 제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덜어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글을 읽으며 ‘비워야 채운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느꼈습니다.


<작가의 답글>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연은 늘 우리 앞에서 가장 단순한 해답을 보여줍니다. 잡초를 뽑으면 작물이 숨을 쉬듯, 삶에서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진짜 중요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자연의 속도에 맞춰 평온하게 흘러가시길 바랍니다.


<작가노트>

퇴직 후 농장에서 흙을 만지며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덜어냄의 지혜’였다.

잡초를 뽑는 동안 마음속 불필요한 생각도 함께 뽑혀 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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