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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기결혼(?)이라고 한다

남편은 365일 다이어트 중

우리의 썸이 시작되던 어느 날이었다.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묻길래 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본인도 좋다고 한다.

밥과 국, 밑반찬이 적당히 나오는 전형적인 한식집에서의 첫 데이트는 완전 취저(취향저격)였다.

그래서 썸이 시작된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레 '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본인은 청소년 때 100kg이 넘었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후 웹툰 '외모지상주의'처럼 사람들의 달라진 반응을 경험했다고 한다.

조용한 성격은 변한  없는데 시크하다는 긍정적인 반응들.

살을  것밖에 없는데 원래 가지고 있던 외모도 성격도 모두 칭찬받게  경험들.

그것은 사실 세상이 바뀐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계속 체중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을 굶는 방식으로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눈빛을 보낸다. 간절하게.

나 또한 그 당시 직장에서 잦은 회식과 운전으로 몸이 부은 느낌이 들어 채식을 하던 중이었다.

다이어트와 채식, 모두 자기만의 체중관리 방법이 아니냐면서 그 방식을 존중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썸 타는 남녀는 '만약에 우리가 연애를 한다면'의 가정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

밝은 미래를 그린 것일까? 미소를 보였다.


술을 못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맥주 한잔 하러 가는 게 괜찮을지 물어봤다.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마시고 싶을 땐 마셔야 한다고 본인도 싫어하진 않는다고.

당당하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심했다.

'연애하거나 결혼하게 돼도 이 정도 맞춰줄 줄 알면 충분하지'


서로 어필했던 그날로부터 3년 반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사기결혼(?)이라고 한다.


결혼하고 남편은 여전히 저녁을 굶는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다이어트.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제로콜라, 제로스프라이트, 나랑드사이다를 돌아가며 마신다. 그 옆엔 나의 맥주, 와인, 고량주가 자리하고 있다.

이 음료들처럼 우리는 섞일 수가 없는 것일까?


남편도 라면과 떡볶이를 먹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찌개에 소주 한잔 해줄 줄 알고,

나도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다가도 떡볶이에 튀김을 찍어먹을 줄 안다.

문제는 서로 피곤하거나 지치면 자신의 입맛을 찾아간다는 것.

조금만 노력을 게을리해도 싸우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과 30년 같이 살아봤다. 지금도 여전히 다이어트 중인 나의 여동생.

도대체 남편이 왜 굶는지 모르겠다고, 적게 먹고 운동하면 되지 않냐고 하소연했더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냐고 되묻는다. 굶는 게 가장 빠르고 쉽기 때문이란다.

언니처럼 먹는 거에 비해 안 찌는 체질은 다이어터의 마음을 모른다며 형부 편을 든다.


남편과 여동생이 매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안쓰럽다.

남편은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말라며 굶고 자면 그 다음 날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운동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하루 자고 나면 온몸이 당기는 것이 오히려 기분 좋은 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주 이기는 남편.

대단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잘못된 시선일까.


아니면 잘난 척하는 마음일까?


나를 들여다봤다.

체질상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천천히 먹는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먹는 거에 비해 안 찌는 것은 분명 미용상 좋은 점이다. 그렇다. 나는 뚱뚱하다고 불편을 겪어본 적이 없다. 외모지상주의 웹툰에도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내 안의 깊숙한 곳에는 나도 살이 많이 찌면 스트레스받을 것이라고 한다. 분명 자신감도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내 체질도 고충은 있다. 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있어도 속부터 아파오기 시작한다.

예민한 성격 탓에 자주 체하는 것은 내가 일상에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 정도가 아니었다. 용량 초과돼서 비상 걸리듯 화장실을 자주 가니까 음식물이 언제 흡수되겠냐며 걱정하셨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 집 앞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청둥오리가 차가운 물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잡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매 순간 생존을 위한 싸움을 이어나가는 오리를 보며 어떤 생명체라도 치열하지 않은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엔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고 또는 마음이 답답해서.


사소해보이는 밥상 앞에서 우리 부부도 관계를 지키려고 치열하게 노력 중이다.

오늘 저녁도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남편.

오늘따라 잘 된 요리를 남편과 같이 나누고 싶은 아내.

이렇게 우리 집에서의 눈치게임은 매일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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