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공화국의 homeless
나는 빨간 벽돌로 만든 넓은 외갓집을 참 좋아했었다. 마당에 풀어놓은 하얀 강아지를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뺐고(포메라니안 사이즈였던 것 같)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갓집에 화재가 발생했고 아름다웠던 집은 완전히 전소되어 버렸다. 주변의 다른 집은 멀쩡했지만 외갓집만 홀연히 사라졌다.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집을 잃어버린 외조부모님은 자녀들의 집을 전전했고 지금은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나이가 들어서야 외조부모님이 집 이상으로 소중한 것들을 그날 함께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고 두 분의 말년이 홈리스 생활이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외출을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까먹기 일쑤였고, 몸이 좋지 않았던 외할머니는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미국 서부 영화에는 자신의 목장과 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들이 반드시 등장한다. 주민들은 힘을 모아 악당 무리를 물리치고 왕년에 날렸던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장례식을 주관하는 목사님이 정의와 공동체의 회복을 선언하며 영화가 막을 내린다. 사건의 시발점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때론 목숨을 걸어야 했다. 보금자리가 없으면 하룻밤을 온전히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고 자식을 보호할 수도 없었을 테니 자신의 거처를 지키려는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선택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현대에 들어서는 집을 넘어서 집값을 사수하기 위한 전투로 조금 변질된 것 같긴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집은 여전히 자부심과 애증, 그리고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삶의 그릇이다. 아, 물론 이런 고민에서 조금 동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0 가구 중 4 가구는 아직 지켜야 할 집을 찾지 못한 상태에 있다. 100 가구 중에서 5 가구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장소에서 살고 있다. 그중에 한 곳이 바로 고시원이다. 여기는 지켜야 할 것이 많지 않은 곳이다. 반대로 말하면 잃을 것이 그다지 없는 장소. 보증금이 사라질 걱정도 관리비와 집값을 신경 써야 할 이유도 없다. 이곳 사람들은 월세가 단 만원이라도 오르지 않기만을 바란다.
4,700여 개 그리고 5,663개. 무엇의 개수일까? 4,700개는 서울시에 위치한 중국 요릿집 숫자(2017년 기준)이며, 5,663개는 서울시에 위치한 고시원 숫자(2019년 기준)이다. 배달앱에 검색하면 한 블록에서도 여러 곳이 검색되는 중국집보다 고시원이 많은 도시. 서울을 고시원 공화국의 심장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것이다. 전체 고시원(11,605개)의 약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15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고시원에 살고 있다. 15만이라는 숫자가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는데, 대한민국 해군과 공군 장병의 전체 합보다 큰 수이며, 꿀빵으로 유명한 경상남도 통영시 인구보다 고시원 거주민이 더 많다.
"국회의원, 정책입안자 분들은 고시원에 가 보고 과연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인지 반문해 보시길 바란다."
한국의 주거 실태를 조사한 UN 인권 전문가 레일라니 파르하가 고시원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그녀는 고시원은 '주거'라고 할 수 없으며, 고시원 거주민은 homeless, 노숙인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고시원 거주민은 주거권을 포함한 헌법상의 어떤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레일라니 파르하는 비주택 거주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한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배제된 주거 정책. 고시원엔 고시생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4만 원.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에서 피해자들의 생사를 결정지은 금액이다. 바로 창문의 가격. 여기에는 햇살과 바람이 옵션으로 포함된다. 고시원의 복잡한 구조와 좁은 복도. 새벽 시간에 발생한 화재.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오래된 사업장. 금지된 전열 기구 사용.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위험 요인과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고시원 화재와 고독사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30년이 흐른 2022년, 영등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2명이 사망하였다. 운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자신의 생활권에서 뜯겨 나와 이전 사례처럼 도시 외곽의 임시 거주지로 옮겨질까? 만약에 갈 곳이 없어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온다면 단 하루라도 편안한 마음으 살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들이 고시원보다는 교도소에 갈 가능성이 높기에 교도소 복지에 더 신경을 쓴다는 농담은 우리의 입 꼬리에 체념과 조소를 문질러 바르며 웃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Why so serious?' 고시원이라는 집은 시민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시민들도 고시원을 보호하지 않는다. 카나리아 제도의 쿰브레 비에호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 속에서 살아남은 한 채의 집이 세계인의 이목을 끈 적이 있었다. '기적의 집'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얼마 후 경로를 바꾼 용암에 휩쓸려 다른 집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아니 우리의 주거 문화는 안녕하신지요?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동요 즐거운 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