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극과 극의 공동생활
고시원, 게스트 하우스, 수병 침실
좁은 공간에서의 공동생활.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살다 보면 부득이하게, 때론 선택에 의해서 처음 보는 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고시원,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생활, 그리고 해군 함정에서의 생활. 오늘은 이 3곳에서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해군에 입대하여 7~8개월 정도 함정 생활을 했었습니다. 해군 침대는 보통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누우면 코가 닿을 정도로 아주 좁습니다. 수병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관짝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출항을 하면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특이하게도 몸을 묶을 수 있는 안전벨트가 침대마다 부착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출항 중에 배가 심하게 흔들려 위층에서 잠을 자던 수병들이 바닥에 우르르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잠꼬대가 심한 한 선임은 철로 된 침대 벽면과 싸우다(?)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기도 했죠.
병사로 입대한 저는 수면 아래에 위치한 수병 침실을 사용했는데 30명가량 되는 수병들이 좁은 침대에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신병은 정해진 자리가 없어 휴가자의 침대를 전전하며 잠을 청해야 했죠. 침실이 지하에 있다 보니 파도가 배 바닥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몹시 시끄러웠고, 벽 건너 내연실의 기계들이 내뿜는 소리에 숙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복무하던 당시 해군은 MP3를 부대에 반입할 수 있었는데, 수병들은 침실을 가득 채운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어폰의 볼륨을 최대한 높여 귀에 꼽은 채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이곳은... 지금 제가 거주하고 있는 고시원입니다. 위에 언급한 두 장소와 달리 이곳은 1인 1실을 원칙으로 합니다. 심지어 개인 욕실과 화장실도 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와 수병의 침실과 비교해야 조금 성해 보이는 저의 고시원입니다. 하하하.) 찌는 듯이 더워 땀이 줄줄 흘렀던 함정의 침실에 비하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고시원은 5성 호텔과 다름없습니다. 여럿이서 한 공간에 어울려 자야 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비하면 고시원은 최고급 요양 시설이죠.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니 행복과 편의는 절대적 개념보다는 상대적 개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열약한 공동생활시설을 다양하게 경험한덕에, 고시원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앞서 언급한 3곳의 장소는 공동생활을 해야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만족도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는 여행과 단기간의 거주를 목적으로 이용하는 숙소입니다.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공간이죠. 그리고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이곳을 떠날 수 있습니다. 금방 머무르다 떠나는 곳이기에 이곳의 시설이 조금 부족하고 낙후되어 있더라고 큰 불만이 생기지는 않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같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차를 얻어 타기도 하며, 사진작가님께 사진 촬영하는 요령과 방법을 배우고, 함께 낚시를 하러 떠나기도 했습니다.
해군 함정은 제가 원한다고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함정이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데 어디로 떠나겠습니까...(원해로 나가면 육지는커녕 배를 집어삼킬듯한 파도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함정 생활을 하면서 몸을 다치는 바람에 저는 중간에 배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만, 어찌 돼었건 군 복무를 끝내면 좁고 빛이 들지 않는 수병의 침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중에는 부대원의 단합과 질서 유지를 위해 자율성을 침해당하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공용시설을 사용하거나 함정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생활반장과 현문(배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두고 당직을 서는 장소)에 허락을 구해야 나갈 수 있었습니다.그래도 함께 홋줄(배를 부두에 정박할 때 사용하는 밧줄)을 당기고 윈드러스(홋줄을 당기는 기구)를 감고, 부식을 나르고, 불빛이 하나도 없는 원해에서 함께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을 함께 바라본 동료들과의 생활이 마냥 힘들고 괴롭지만은 않았습니다(거짓말 입니다). 좋은 선임과 동료들, 후임들을 만나 잊지 못할 추억도 참 많이 쌓았죠.
마음에 장벽을 쌓는곳
고시원은 게스트 하우스나 수병 침실과 달리 일상에서의 주거와 생활이 목적인 공간입니다. 고시원은 게스트 하우스나 수병의 침실 처럼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공간이지만 사람을 사귀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함께 여행을 떠날 일도, 낚시를 하러 갈 일도, 함께 홋줄을 당기거나 당직을 함께 서는, 함께 땀 흘리며 노동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각자도생하는 공간입니다.
고시원에 입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날 돈이 모인다면, 시험에 합격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다신 돌아오지 않을 곳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점에서 고시원 거주자들은 이곳 사람들과 되도록이면 정을 주고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시원은 말없이 들어왔다가, 말없이 사라지는 곳이기 때문이죠. 보통 가방 하나 메고 이사를 와서, 가방 하나 들고 떠나는 곳이 바로 고시원입니다. 이사 떡은커녕 서로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이웃이 바뀌는 공간.
고시원은 물리적인 벽보다 마음의 벽이 더 두꺼운 공간입니다. 서로의 소음은 공유하지만 마음만은 쉽게 나누지 않는. 이곳 사람들에겐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단결해야 할 이유도, 함께 손잡고 여행을 떠날 여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광장도 밀실도 아닌, 그렇다고 중립지도 아닌 묘한 공동생활 공간. 세월이 흘러 고시원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땐 아마 좁고 어두운 방에 홀로 누워있는 생기 없는 표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