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비디오 게임 <동키콩>으로 성공의 맛을 본 닌텐도는 40kb의 저용량 후속작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빨간 모자와 콧수염, 멜빵바지를 입고 토관을 오르내리는 배관공의 독특한 외모는 제한된 픽셀 속에서 자연스러운 모션을 만들어내기 위한 위장의 결과물이었고,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구름 이미지를 땅에 심어 수풀로 둔갑시킨 캐주얼 게임은 전 세계에 4,000만 장이 팔려나갔다. '마리오' 시대의 포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글 상단에 업로드한 이미지 파일 한 장이 4,000kb가 훌쩍 넘는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40kb짜리 게임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홀렸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마리오'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개발된 여러 후속작은 8억 장이라는 어마무시한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마리오는 닌텐도의 핵심 IP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교토에 본사를 둔 슈퍼-닌텐도는 오사카 서쪽 해안가에서 20년 가까이 성업 중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손을 잡았고, 닌텐도 게이머들이 막연히 꿈꾸던 몽상의 세계를 축구장 4개 규모의 46,000 제곱미터의 땅 위에 건설해 냈다. 마리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주도 하에 건설비 6,300억을 투입한 슈퍼-닌텐도 월드는 2021년 봄에 데뷔전을 치렀고 곧장 최고의 인기 어트랙션이 되었다. 여의도의 더현대 건설비용이 약 7,000억으로 추정되는데 테마파크의 한 어트랙션 가격이 6000억이라니!
게임이 현실의 일부를 반영하던 일방향적인 시대가 저물고, 현실과 게임이 서로에게 활발히 간섭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3D 안경과 요동치는 관객석이 필요 없는 비디오 게임 기반의 현실-놀이터다. 접속자의 숫자를 보니 닌텐도의 새로운 시도는 합격점을 가뿐히 추월해 버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과도한 트래픽 증가로 어트랙션과 식당 대기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정해진 입장 시간에 맞춰 검표원의 간이-심사를 통과한 우리 가족은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슈퍼-닌텐도 월드에 입장할 수 있었다.
마리오 시리즈의 동네북이라고 할 수 있는 굼바가 눈알을 부라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뻐끔 플라워와 무시무시한 인상의 동키콩을 본 아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물음표 박스 아래의 그늘로 피신했는데, 이곳에선 아빠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입구에서 판매하는 4만 원짜리 전용팔찌를 착용하고 박스를 두드려야만 경쾌한 멜로디 소리가 '띠리링'하고 울리는 것이 아닌가. 팔찌가 없다면 이보다 우울기 힘든 '우우우웅'소리를 '옛다'하며 던져준다. 독점시장의 고질적 횡포가 아닐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는 무릎에 앉아 슈퍼닌텐도 월드의 사진을 보며 '우와~ 우와~우와'라며 감탄을 늘어놓고 있다. 아이의 키가 85cm 밖에 안되는지라 탑승할 수 있는 어트랙션이 단 하나도 없었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황금 코인과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버섯에서 한시도 뚱그런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린 시절, 슈퍼마리오를 플레이할 땐 벽돌을 부수고 불꽃을 쏘고 굼바를 짓이기느라(?)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는데 점프도 대시도 쉽지 않은 관절이 부실한 30대가 되어보니 버섯월드가 공을 많이 들인 아름다운 장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마리오 애착 이불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인 형님과 처형, 그리고 조카들을 위한 귀여운 기념품을 하나씩 구매했다.
*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입장권은 자유이용권에 해당하는데, 슈퍼 닌텐도 월드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추가비용' 또는 약간의 '행운'이 필요하다. 닌텐도 월드에 입장할 수 있는 확약권이 포함된 비싼 티켓(ex : 확약권 포함 익스프레스)을 구매하거나, 별도의 유니버설 앱을 설치하여 입장객에게 추첨으로 주어지는 티켓을 노려야 한다.
슈퍼 닌텐도 월드의 아성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해리포터 어트랙션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호그와트 성 아래로 펼쳐진 마법사 마을 호그스미드에는 버터 맥주를 마시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머글로 가득했다. 특히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어트랙션으로 가는 숲길에선 해리포터 2편에 등장하는 날아다니는 자동차 포드 앵글리아도 만날 수 있다.
해리포터 번역본이 새로 출간될 때마다 서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던 Z세대 팬들은 마법사 마을에 오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인근의 호텔을 예약한다. '해리포터 마법세계' 오픈 이후 연입장객수가 약 삼백 만 명 정도 증가했으며, 슈퍼닌텐도 월드는 100조 수준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1/3000 정도의 크기인 USJ는 약 1,500만 명의 관광객을 홀로 소화해내고 있다. (2024 제주도 방문객 13,783,911명)
이외에도 스파이더맨, 미니언즈, 쥐라기공원, 헬로키티, 슈렉 등 여러 IP를 활용한 60개에 가까운 어트랙션이 있으며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이상 하루 만에 다 돌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인기 어트랙션은 대기시간 안내판에 180분(?)이 예사로 찍히곤 하는데 이런 이유로 오픈런은 필수이고, 1.5일권을 구매하여 모든 어트랙션을 정복하고자 하는 관광객도 많다.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왔다면 나 또한 이런 행렬에 동참했겠다만 아이와 함께 들린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그저 값비싼 산책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서 '오징어 놀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고무줄놀이는 TV 예능에서나 볼 수 있는 민속놀이였다. 이곳의 테마 중 하나인 영화 <죠스. 1978>는 이름으로만 들어보았고 팔순을 바라보는 스누피와 반백살 헬로키티는 나의 어린 시절에도 삼촌 이모나 좋아할 법한 '옛날'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무엇하나 낡아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로초단위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도 어떤 이야기는 무한히 늘어지는 시차를 극복해내고 있었다. 두 살 아이는 부모 세대의 오래된 동심을 묘사한 세속의 성상을 가볍게 지나치지 못했다.
"닌텐도 캐릭터들이 지닌 매력은 가족 전체를 한 데 모은다는 점입니다."
슈퍼 마리오의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거대한 시류 속에서 자신만의 기술을 연마하였고, 할아버지가 개발한 게임은 오래 살아남아 이제 손자의 오락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마리오는 아저씨였지만 지금은 나와 몹시 닮은, 수염과 배가 나온 동년배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2023년생의 우리 아이는 어린 시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리오를 아빠를 닮은 배불뚝이 아저씨 캐릭터로 친숙히 받아들일 것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구시대와 새 시대가 교차하는, 전통과 현재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가장 트렌디하고 '값비싼' 우리 모두의 국경 없는 민속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