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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별 Apr 20. 2024

일기 쓰기

이걸 왜 써야 하죠?? ㅡㅡ


일기 쓰기

          

연필을 잡고 또 잡아 보지만

아... 쓸 게 없어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 보지만

아... 쓸 게 없어요     


평범했던 하루

그저 그런 하루

특별한 것 없는 하루

재밌는 일 없는 하루

    

이런 날은 아무말 대잔치야

여기저기 말들을 끌어모아

빈칸에 꾹꾹 눌러 담아 보자   

  

내 손으로 조물조물 쭉쭉 늘리면

한 줄이 한 장으로

나는야 능력자      





  나는 일기를 언제까지 썼던가?? 고등학교 이후로는 아예 잊고 살다가 어른이 된 후 어느 날,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종이가 아닌 컴퓨터로 00월드 다이어리에 며칠 끄적이다가, 또 삶이 바빠지고 피곤해지면서 손에서 놓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우리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 가게 되면서 다시 '일기'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새로웠다. 아기말 하던 아이들이 벌써 일기를 쓸 정도로 컸나 싶기도 하고,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이 생각나기도 했다. 일기장의 형식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1~2학년때까지는 그림과 함께 쓰는 그림일기, 3학년부터는 글만 쓰는 일기장을 주로 쓰고 있었다. 나 때처럼 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하고 짧은 글도 달아 주시기도 한다. 달라진 거라면 내 기억으론 그림일기장이 스케치북 만한 것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쓰던 건 일반 공책 크기라는 거, 그리고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짧게라도 매.일. 쓰는 게 일.기. 아닌가? 일주일에 고작 이틀 쓰는 게 숙제인데  우리 아이들은 그것도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한꺼번에 몰아서 쓰곤 한다. 특히 방학엔 그냥 놔두면 미루기가 끝이 없어지기 때문에 주말마다 한 번씩 점검을 해줘야 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 방학 때 개학날을 코 앞에 두고 일기를 몰아 쓴다고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꼭꼭 잔소리를 한다. 다른 숙제는 몰라도 일기는 미뤄서 벼락치기로 하기 힘든 숙제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나고, 날씨는 더더욱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날씨는 엄마의 가계부를 보고 커닝했었고, 정말 쓸 게 없으면 안 한 일을 지어내기도 했었다. ㅎㅎ 나 때는 일기를 매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니 학교에 가서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는 정말 정.성. 스럽게 쓰더라. 무슨 내용을 쓸지 엄마랑 상의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예쁜 일기장에 예쁜 연필을 깎아서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써 간 일기를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끝에 몇 자 적어주시면, '엄마~ 선생님이 이렇게 주셨어!' 하며 달려와서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기 쓰기는 귀.찮.은. 숙. 제. 가 되어 버렸다. 정말 쓸 게 없다고 투덜대거나, 글씨가 괴발개발에 지렁이같이 쓸 때가 많았다. 한 번씩 내 옆에서 쓰면서 '엄마~ 이 뒤에 일기 내용 좀 불러주면 안 돼요? 진짜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그 일기장의 글씨를 보고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이러면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겠냐고 또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니 일기 쓰기가 그렇게나 싫은 일인가? 나도 어릴 때 저 정도였는지 내 초등학교 일기장을 다시 꺼내보려다가 참았다. 생각해 보니 내 글씨도 그럴 때가 있었던 것이 떠올라서이다. 주 2회도 저러는데 주 7회는 얼마나 더 싫었을까? ㅎㅎ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일기를 쓰는 걸까? 일단 초등학교 숙제로 내주는 이유는 아마 맞춤법과 글 쓰는 능력을 향상하며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져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일기라는 게, 그날의 특별한 일을 기록하는 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바쁘게 살면서 어제 일도 생각이 잘 안 나는 사람들은, 적어 놓은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메모를 보면서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끄덕이게 된다. 한 사람이 꾸준히 쓴 일기들은 그 사람의 역사책이 되는 것이다.  한 번씩 내 초등학교 일기장을 꺼내 보면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온다. 내가 저 나이에 저런 일이 있었고 저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기능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보통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되짚어보며,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오늘은 정말 착한 일을 했다고 뿌듯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 그 연장선으로 내일은 무얼 해야지 혹은 앞으로 이렇게 해봐야지 하는 계획도 세우게 되더라.  


  그리고 일기 쓰는 시기에 따라 일기가 주는 효과도 다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귀찮던 것이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는 아주 소중한 버팀목이 되었다. 짝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하지 못하던 말들을 일기장에 예쁘게 쓰고 꾸며서 선물로 주기도 했었고(정말 되돌리고 싶은 흑역사지만 ㅠ.ㅠ), 같은 반 친한 친구와 자물쇠 달린 교환일기를 쓰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친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깊은 고민이나 생각은 나만의 일기장에 다 털어놓았었는데, 비록 대답 없이 들어주기만 하여도 내편이 있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하고 안심이 되었었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조용히 나는 나의 사춘기를 잘 버텨온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글'이란 것을 조금씩 쓰다 보니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부끄럽지만 시도 써보게 되고 짧은 소설도 써보게 되었다. 비록 아직 이름을 알리는 작가가 되지는 못 했지만 그 영향으로 글쓰기에 손을 놓지 않고 지금 이곳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어도 일기 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쓰진 못 하더라도, 긴 글이 아닌 짧은 메모나 시나 그림 같은 형태일지라도. 아님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잠깐 하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도 내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나를 지적하고 칭찬하고 다짐하고 다독이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짧은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듯이 그렇게 하루하루의 일기가 쌓여 나의 멋진 삶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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