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난징(古都 南京) 스토리
중국의 역사(歷史)에서 여러 왕조의 수도 였던 남경(南京)은 장쑤성(江蘇省)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인구 1000만 명의 대도시다. 상하이(上海)를 현대도시라면 남경(南京) 은 중국의 a육조(六朝) 역사를 품은 고도 (古都)라 불린다.
상하이(上海)에서 b후닝(滬宁)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장강(長江)을 끼고 쑤조우 (蘇州), 우시(無錫), 창조우(常州), 쩐장(鎭江) 그리고 난징(南京)에 도착한다.
상하이 (上海)와 난징(南京)을 잇는 구간은 중국에서 산업과 교통이 가장 밀집된 지역 중에 하나다. 중국에서는 c호녕경제주랑 (滬宁經濟走廊)이라 부른다.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은 장강(長江) 이란 큰 강변을 공유하고 있지만 상하이 (上海)에 황푸강(黃浦江)이 푸둥(浦東)을 감싸 안고 있다면 난징(南京)은 친후이하 (秦淮河)가 도심을 흐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강은 문명을 낳아 품고 키우는 젖줄의 의미를 갖는다.
모든 역사, 특히 한국과 중국 역사의 흔적 들은 무덤으로 남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열망(熱望)이었든 아니었든 무덤을 통해 그들의 발자취가 남겨지고 있다. 애굽의 피라미드도 다르지 않다.
난징(南京)의 동쪽에 길게 뻗어 있는 쯔진산(紫金山)에는 중국 역사에 520년 이란 시차를 두고 거대한 족적(足跡)을 남긴 두 인물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과 중화민국 (中華民國)을 건국한 손문(孫文)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밍샤오링(明孝陵)이라고도 불리는 주원장 (朱元璋)의 무덤은 d릉(陵 Mausoleum)에 해당하는 규모와 건축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UNESCO에 등제 되어 있다.
주원장릉 입구의 신도(神道) gpt 提供
석상들이 늘어선 신도(神道)가 1.8km나 되며, 능역(陵域)의 둘레가 22km로 중국 황제릉 중에 규모가 제일 크다.
쯔진산(紫金山) 동쪽 중턱에는 d392계단을 오르면 손문(孫文)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중화민국(中華民國)을 건국한 손일선 (孫逸仙)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손중산 (孫中山)이란 이름이 익숙하고 대중적이다.
손문릉(孫文陵)입구 392개의 계단 gpt
중국 2000년의 황제의 역사를 끝내고 신해혁명(辛亥革命)을 통해 공화국을 수립한 그를 중국에서는 국부(國父)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외의 관광지로는 명(明) 나라 때 축조된 남경성장(南京城牆)이 있다. 그 둘레가 34km로 고대 성벽으로는 가장 큰 성벽 중에 하나다. 진회하(秦淮河)의 강가에 공자 (孔子)를 모신 사당(祠堂)인 부자묘 (夫子廟)가 있다.
상하이(上海)의 황푸강(黃浦江)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었다면 난징(南京)의 친후이허 (秦淮河)는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쑤조우(蘇州), 우시(無錫), 창조우(常州), 쩐장(鎭江) 등지의 젊은이들과 외자(外資) 기업에서 일하는 대만과 홍콩인들이 주말 이면 난징(南京)으로 많이 몰려갔다.
상하이(上海)에 비교해서 난징(南京)의 밤문화가 순박하고 저렴하다고 했다. 경제로 지친 상하이의 피곤을 문화가 융성한 난징에서 푼다는 심사였는지도 모른다..
세월 따라.. <30>은 "남경과 신라 최치원 (崔致遠)"에 대한 스토리가 마지막으로 발행됩니다.
註)
a육조(六朝)오.진.송.제.양.진(吳 晉 宋 齊 梁 陳)
b후닝(호녕滬宁) 상해(滬)와 남경(宁)
c호녕경제주랑(상해. 남경 경제 Corridor)
d릉(陵Mausoleum) 규모가 크고 건축물 형태의 무덤; 라틴어
e392계단 당시 중국 인구 3억 9200만 명을 상징하는 계단수(階段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