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인 전공자라면 한 번쯤
“옷 좀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건 디자인과 기초 지식에 가깝다.
그래서 바로 실무에 적합한 제작을 하는 것은 어렵다.
실제로 기성복 회사에서 디자이너가 직접
옷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제작은 공장·패턴사·봉제업체의 영역이다.
그래서 업계에 처음 들어오면,
디자이너가 왜 원단·패턴·봉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지,
그리고 작업지시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패션업계에 있다’는 말만 듣고
모든 옷을 잘 알 것이라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 역시 전문 분야가 있으며,
어느 영역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모를 수도 있다.
패션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요리사와 비교하여 설명해 보겠다.
요리사에게 한식·중식·양식 등 전문 분야가 있듯, 패션 디자이너도 정장·캐주얼·유니폼 등 자신만의 시장이 있다. 또한 다루는 원단(다이마루, 직기, 가죽 등)에 따라 전공 분야가 세분화된다. 대부분 원단에 따라 제조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레시피를 개발하듯, 디자이너는 의류 제작을 위해
작업지시서(Tech Pack)라는 것을 작성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다.
- 원단·부자재
- 사이즈 및 봉제법
- 도식화(옷의 평면도)
- 제작 수량
작업지시서를 기반으로 참조 샘플을 준비하고,
패턴(의류 설계)을 거쳐 샘플 제작 → 생산 단계로 이어진다.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레시피를 다른 요리사가 만들어도 같은 맛이 나올 수 있도록 재료와 과정 전체를 통제한다. 디자이너 역시 직접 제작하지 않더라도 제작 과정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직접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제작업체와의 소통력과 설계력이 더 중요하다. 작업지시서를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 제작과 관련한 참조 샘플 준비
- 제작업체가 정확히 이해하도록 설명
- 제작 과정 전반을 긴밀히 협력
- 이 모든 과정이 디자이너의 몫이다.
생산 과정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책임은 공장만이 아니라 디자이너에게도 있다. 디자이너는 샘플 제작 단계에서 공장측에 생산 사고 가능성 체크해야 한다. 생산이 들어가 있는 동안 할 일은 더 많다. 부족한 원단 및 부자재는 없는지, 혹시 원단이 불량은 아닌지 등 업체와 계속 소통해야 한다.
“공장이 알아서 만들어주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만들 수 없는 옷의 작업지시서를 작성하거나,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가 곧 브랜드 리스크로 이어진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분적인 책임은 나눠질 수 있지만, 결과에 대한 총체적 책임은 디자이너에게 있다. 출고 내 판매를 못하면 가장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디자이너는 설계자이자 흐름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디자인을 배울 때는 단순히 창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디자인한 옷이 실제로 제작 가능한지 검토하고, 실제 옷을 관찰하고 제작해보며, 패턴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패션 디자이너는 단순히 그림 속이 머무는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옷이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결과를 만들어내는 설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