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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있는쫄보 Mar 09. 2021

죄송하지 않지만 즈승흡느드 &정말 죄송합니다

컴플레인을 대하는 가식과 진심,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

아르바이트까지 합치면 나는 성인이 되어 경험했던 직종은 모두 서비스업이다. 콜센터(20살 때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하루 만에 나가떨어졌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페, 인천공항 면세 인도장까지. 물론 승무원이 꿈이었던 나로서는 경험도 쌓고, 자소서에 쓸 에피소드를 적으려면 서비스직군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좋으니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지만, 서비스직 말고는 하고 싶은 아르바이트도, 직군도 없었다. 


승무원을 1년 하고 반을 준비했다. 스터디를 하고, 모의 면접을 하고, 면접 답변을 다듬고 나서는 목표가 목표인지라 살이 찌면 안 되니까 저녁을 거르고 공원에 가서 1시간을 운동을 하고, 요가 수업을 1시간을 듣고 집에 오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했지만 내 자리가 아니었는지 결국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다른 사무직 쪽으로 눈을 돌려 애써 자소서를 쓰고 제출을 했다. 진심으로 원하는 직군이 아니라 그런지 내가 읽어봐도 자소서는 정말로 형편없기 짝이 없었고, 차선으로 호텔 쪽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의 한 계열인 호텔로 흔히 말하는 '취뽀'(요즘에는 이런 단어를 안 쓰려나,,)에 성공했고, 2016년도 1월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5년 차 호텔리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큰 컴플레인을 받고,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할 일이 아예 없었던 나는 호텔에서 일을 하면서 아주 다른 신세계를 맛보았고, 내가 이런 꼴을 당하려고 일 년 반 동안 평소에 하지도 않았던 다이어트를 하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닌 건가 싶을 때가 허다했고, 내가 이런 일을 진심으로 원했다고? 되묻는 날들이 많았다. 이유는 사람, 그들이 하는 셀 수 없는 컴플레인이다.


컴플레인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1) 정말로 손님이 화날 수밖에 없는 일들

가령 객실에 다른 손님이 갑자기 들어온다던가, 체크인을 했는데 객실이 더럽다던가, 객실료를 이상하게 결제를 했다던가 등등 정말 화날만한 이유가 있는 컴플레인.


2) 휴먼 에러가 아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발생한 컴플레인들

옆 객실에 투숙하고 있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시끄럽냐, 이 호텔 주차장은 내려가는 길이 왜 이리 좁고 꼬불거리냐 등등


3) 아무리 생각해도 왜 내가 욕을 먹고 있는 건지 모를, 이렇게까지 크게 컴플레인할 일이야? 하는 일들

예를 들면 그 전날 만실이었는데 아침 10시에 와놓고 "왜 체크인을 안 해주냐, 못해주면 조식이라도 내놔!" 혹은 "나 VIP인데 객실 업그레이드를 이것밖에 못해준다고? 장난해?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 나오라 그래! 총지배인 당장 내려오라 그래!" 혹은 "저기요, 거울에 손자국이 있어요. 기분 나빠요. 나는 돈 주고 투숙 못하겠는데 어떡할래요?" 등등 이런 종류의 컴플레인들은 24시간이 뭐람, 시간만 있으면 쉬지 않고 줄줄 읊어댈 수 있다.


1번같은 컴플레인들은 내 잘못이 아니어도 정말 진심으로 사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양심이 있지 돈 내고 오는 사람들인데 이런 경험을 하게 한다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하게 되고 보상차원으로 치즈와 와인, 조식, 혹은 매니저에게 말을 해서 뷔페까지 제공을 한다. 가끔씩은 진심 어린 카드도 써서 객실 문 사이로 넣기도 한다. 이런 손님들 같은 경우엔 진심을 다한 사과 덕분일까? 십중팔구는 화를 가라앉힌다. 체크아웃할 때도 다시 한번 사과를 하면 보통은 너그럽게(?) 받아주는 손님들이 더 많다.


2번 같은 컴플레인들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손님 입장에서 공감해주고, 살살 달래주면 흥! 하고 체크인을 하고 그 후로는 별 컴플레인을 하지 않는다. 주변 객실이 시끄럽다는 손님에게는 "불편하셨죠?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 당장 해당 객실로 가서 주의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니, 주의까지는 아니고요. 뭐 그냥 그렇다구요.. 저 사람들도 호캉스 하러 왔을 텐데 괜찮아요"라고 하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 


대망의 3번. 아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직의 사람들; 호텔리어, 승무원, 레스토랑 직원 같은 경우 모두 공감할 것이다. 도대체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안 되는 것들을 되라고 하는 사람들에겐 뭐라 할 말도, 도무지 달랠 방법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를 낸다. 특히, 나는 너네 호텔만 이용하는 VIP인데 객실을 이것밖에 못줘?라고 말을 해버리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래, 만실이 아니라면 이런 아쉬운 말 듣기 싫어서라도 나는 그냥 업그레이드를 해줬을 텐데 스위트 객실에 투숙하려고 이미 돈을 내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찬 오늘, 그들을 쫓아낼까 아니면 없는 스위트 객실을 내가 직접 만들어서라도 줄까 라고 대놓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아니 매 주말, 공휴일, 연휴마다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혹은 우리들은 정말 하나도 죄송하지 않지만 죄송하다고 '해준다'


참.. 가끔 생각해보면 극한 직업 중 하나다. 괜히 감정 노동자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다. 면대 면으로 일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말을 조금 가려서 하지 않냐는 친구들의 물음엔 나는 단호하게 "전혀"라고 말한다. 오히려 유선으로 예고편을 선사하기도 한다. "조금 있다가 직접 봅시다. 매니저한테 말해서 만날 준비하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프런트 데스크에 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욕을 하는 사람들이 요새 더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끔은 정말 화장실에 가서 귀를 씻고 싶을 정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호텔에서 일하는 이유는 아직은 이런 사람들보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쓰는 지금 매우 씁쓸하다) 손님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컴플레인을 핸들링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많이 힘드시죠, 수고가 많아요 정말.. 아휴 정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예요? 쯔쯧.." 이라고 위로를 해주는 손님들도 있고, "제가 아까는 조금 흥분해서 말했죠, 죄송합니다. 사실 지배인님 실수가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라고 말하면서 먼저 사과해주는 손님들도 있다. 그리고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주말인데 수고가 많아요!"라며 각종 빵과 음료를 주면서 함박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는 손님들이 있고, "저 지배인님한테 체크인받으려고 아까부터 기다렸어요. 잘 지내셨죠?" 라며 나를 기다려 주는 손님들도 있다!


중간중간 울고 싶고,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런 손님들이 오면 언제 컴플레인을 받았냐는 듯 다 잊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기분이고 가끔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일한다. 진짜로. 그래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끼리 서로 우리는 변태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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