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상하다. 시간이 왜 남지?”
13년 전, 어느 대학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수업 시간을 넘겨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강사이고 싶었는데, 첫날부터 수업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는 굴욕을 겪고 말았다. 어색함과 민망함에 등에 주르륵 진땀이 흐르던 기억은 아직도 어제 일인 듯 또렷하다.
당시 만 1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어느 예술대학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관련된 과목을 맡게 되었다. 여러모로 설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의 강의라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꿔온 일이 아니었던가. 기자가 되기 전 석사학위도 취득했기에 학문적으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기자로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담당한 지는 7년을 넘기고 있어 나름 자신감도 있었다.
강단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의에 앞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A4용지에 적었다. 교재는 있었지만, 책을 줄줄 읽을 일은 아니니 말이다. 취재 경험을 더해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보자며 의욕적으로 개요를 짰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개요라고 하기엔 단어의 나열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스토리텔링도 구상하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니, 아뿔싸.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학생들 앞에서 긴장을 한 탓이었을까. 서로 주고받는 소통을 하기보다 내 할 말을 하느라 바빴고, 일방적인 말에는 가속도까지 붙어 연습할 때보다 강의 시간이 짧아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제야 생각해보니 나는 준비된 강사라고 보기 어려웠다. 평소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었다. 일의 특성상 글을 자주 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자들은 다른 직장인들과 달리 PT를 할 일도 거의 없어 스피치 경험도 많지 않았다.
의욕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당시 강의 경험은 두 학기로 중단되었다. 때마침 임신과 출산을 한 터라 더 이상 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사실 강의는 나에게 일종의 실험이었다. IMF를 겪으며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터라 늘 살아남는 것이 숙제였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각종 특종상 기획상 등 수상도 많이 했지만, 미래에 관한 불안은 항상 잠재되어 있었다. 신입일 때부터 선배들은 ‘나중에 뭐 할지 미리미리 생각하라’는 말을 하기 일쑤였다. 나는 시간이 나면 ‘2막’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그중,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나 하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 카페 아르바이트부터 해 보라는 내용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석사 때도 박사까지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어려서 꿈도 교수였으니, 강의를 해 보자.’ 그렇게 ‘2막’을 염두에 두고 해 본 강의였는데, 영 어려웠던 것이다.
출산 이후 고민은 더 커졌다. ‘과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기자를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기자는 어떤 사안을 먼저 접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라, 과연 나만의 콘텐츠라는 게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면 굶어 죽지 않을까?’ ‘다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첫 강의로부터 7년 뒤, 다시 강의를 맡게 된 나는 현재 7년째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7년 전 강의를 다시 시작할 때에는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지금은 여러 대학의 학과들에서 지속적으로 강의를 맡게 되어 3년 전부터는 몇 군데는 정중히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학기 중에는 5-6과목을 맡아 바쁘게 강의를 하지만, 이번 여름 방학에는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 시절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갑자기 나의 강의 기술이 드라마틱하게 성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끼 넘치는 무대 위의 스타 강사처럼 학생들을 쥐락펴락하지 못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과 학생들, 교실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변화를 줬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나름의 비결이 있었던 것 같다. 퇴사 후 어떤 일이든 내 길을 찾을 때 필요한 지침들이다.
첫째, 직장에서 쌓은 내 스타일 살리기. 첫 강의를 망치고 나는 ‘티칭’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회사 밖은 정글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분명히 나에게 쌓인 나만의 장점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좋아했던 것, 잘하는 게 뭐였지?’ 생각해보니 한 사람 한 사람 섬세하게 파악하고 맞춰서 피드백을 주려고 했던 점이었다. 수업도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후배들과 함께 기사를 기획하며 회의를 하고, 마감 시간을 설정하고, 글을 고치며 피드백을 주었던 경험을 살려 보기로 했다. ‘티칭’이 아닌 ‘코칭’을 나의 강의 방식으로 설정했다. 자연히 수업은 학생들과의 소통이 중요해졌고, 팀 활동이 반드시 포함되었다.
둘째, 신입의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기. 길을 만들 기회가 올 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부장으로 퇴사를 했어도, 새로운 일에서는 신입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티칭이 아닌 코칭 방식의 강의를 하자 대학원 스타일이라며, 대학원 과목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아티스트 브랜딩’이라는 과목을 두 학기짜리로 기획해 2년간 운영을 했다. 지난해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이 올해 이 주제로 졸업논문을 작성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나로서는 더없이 뿌듯한 일이다. ‘미디어 글쓰기와 스피치’ 과목의 경우, 유학생반을 신설할 당시 맡아보겠냐는 말씀에 바로 수락을 했다. 유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하면 흔히 ‘너 중국어나 일본어 할 줄 알아?’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수업이니 한국어로도 충분하다. 여덟 학기 동안 유학생들을 지도했고, 이번 학기에도 유학생과 또 만나게 된다.
셋째, 메타인지 기르기. 흔히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분야를 오래 하면서 전문가가 된다. 전문성을 갖춘 건 좋은 점이지만, 자칫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우려가 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인디펜던트 워커로 일을 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고객’의 입장이 우선이다. 의외로 이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다. 강사 초창기에는 강의를 밤새워 준비하고 쉬지 않고 내가 시간을 채워 넣는 게 전문가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하지만, 강의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학생들에게 도달하고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나의 열심을 증명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직장을 나와 새로운 영역에서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잘 분석하고, 직장생활의 내공을 살린다면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그 확신을 갖기 어려워 사실 퇴사하기 전, 퇴사 후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방황을 많이 했었다. 나의 글이 비슷한 상황의 분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