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의 소중함
10일의 긴 연휴,
나는 오랜만에 제주도에서 식구들과 보낼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한 달 전부터 제주도 티켓을 예매하고 떠나는 날 아침부터 분주히 짐을 챙겼다. 출발시각 3시간 전,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돌아가실 것 같다고.... 3일 전에 대전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왔던터라 당황스러웠다.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그 길로 차를 몰아 대전으로 향했다. 제주도에 있는 아내와 아들은 비행기를 타고 청주공항을 거쳐 대전으로 왔다. 요양원에 도착하니 먼 복도까지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그냥 편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의견도 있었지만 곧바로 119를 불러 중환자실로 모셨다. 연명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많은 갈등이 따른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료비가 얼마나 들 지도, 얼마나 더 사실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 쉬기를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우리 가족은 연휴를 꼬박 대전에서 보내야했다. 매일 아침 11시 ~ 11시 30분 짧은 면회시간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전에 머무르려 하니 모든 것이 힘들었다. 매형이 지내던 사택에서 주인없이 지내고 모든 끼니는 시켜 먹거나 나가서 사먹어야 했고 부족한 옷가지와 생필품은 새로 사야했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무료하게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지내야 하니
"아빠, 언제 집에 가?"
라는 말을 매일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나의 결정이 현명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돌아가실 것 같던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점차 안정을 찾고 계시다. 연휴내내 문자 진동 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불안해 하던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하루하루 무탈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세상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비록 우리 가족은 내가 있는 서울도, 아내가 있는 제주도도 아닌 대전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지만 그 덕에 내 고향 대전을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아침 중환자실 면회가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성심당을 가고 으능정이 거리, 갑천주변을 거닐었다. 나에게 '대전'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기는 하지만 애증의 도시이다. 나에게 대전은 무엇인가 집안 문제를 해결하러 내려오는 곳, 아프셨던(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병문안하러 오고, 치매에 걸리신 엄마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곳이기에 마음 편히 고향에 와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고향을 외면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대전을 다시 바라 보게 되었다. 대전 구석구석을 운전하며 어릴 적의 추억에 빠지기도 했고 오랜만에 고향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상황은 분명 좋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을 고향에 있으니 차츰 고향이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려 하는 것일까?
세상을 살며 행복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행복은 엄청난 행운을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무런 일 없이 하루가 흘러갔다면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사람은 왜 이 당연한 사실을 금방 잊어버리고 욕심만 부리며 살고 있는 것인지
무엇인가 큰 것을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울로 돌아와 병원에 전화해 보았다.
어머니가 편하게 숨을 쉬고 계신다고 했다.
잘하면 인공호흡기를 떼실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간다.
행복한 날이다.
*브런치를 하며 이렇게 오래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여러 일이 있어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다시 마음의 끈을 단단히 메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