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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지우개

매일 글쓰기 4. 잃어버린 것

by 새벽별

가깝게 지내는 한 교회의 사모님이랑 대화를 할 때마다 느낀 점이 있다.

‘나랑 며칠 전에 얘기한 내용인데 기억을 못 하시네. 내 얘기를 대충 들으셨나?’

그 사모님도 민망하셨는지 “내가 이렇게 자꾸 깜박깜박해요. 미안해요~”

그땐 몰랐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줄은.





어느 순간부터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좀 전에 너무 좋다고 감동하며 읽었던 책의 구절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의 내용도. 내가 어제 뭘 했지? 이번 주에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뭐지?



아이들이 즐거웠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날 입었던 옷, 마주쳤던 사람들, 먹었던 음식,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하는데 도무지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엄마의 호응과 반응을 기대하며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를 당황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언제부터 그랬나 곰곰 생각해 보면 40대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인 듯하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총명하신 분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러는 걸까. 가끔은 두렵다. 이러다 정말 기억하는 힘을 잃어버릴까 봐. 내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둘씩 날리게 될까 봐.

(윽, 툭툭 끊어져 가는 나의 뇌세포 소리가, 뉴런이 끊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그래서 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책을 읽지 못하면 불안해한다거나 초초하지는 않았다. 읽으면 좋고 안 읽어도 크게 상관없는. 그런데 점점 기억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오늘도 책을 붙잡는다. 단 한 줄이라도, 단 한 페이지라도!

읽고 좋은 구절은 꼭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나중에 책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글귀를 적어놓은 노트를 보며 그 순간을 떠 올리고 싶어서.

나 이렇게 애쓰고 있단다. 그러니 내 머릿속의 지우개야, 조금만 천천히 움직여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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