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로 '된다'로 키운 아들

by 여행하는 술샘


여자 친구와 경주로 놀러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안 된다고 한 게 있었어?" 대뜸 이렇게 묻는다. 잠시 생각했다. 안된다고 한적 있겠지. 했더니, 아들은 내가 다 된 다고 한것 같단다.


경주에 도착해서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옆 테이블에 아이에게 아이 엄마가 계속 안된다고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1분 동안 안된다는 말을 다섯번도 넘게 했다며, 엄마는 안 그런 것 같아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 했단다.


정원이가 일곱살 쯤이었다. 지인이 하는 미술학원에서 '여행으로 크는 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수업을 위해 강의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정원이가 내 옆을 지나며, "하라로 키워야지"했다. 그 때 슬라이드 첫면의 제목이 '하라로 키울 것인가, 하지말라로 키울 것인가'였다.

되도록이면 '하지말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안되는건 있었을 거다. 그래도 정원이 기억에 내가 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엄마였다니 다행이다.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라. 안되는 일도 있지." 이렇게 말하고 짧은 통화를 했다.


정원이와 한시간이 넘도록 통화하고, 방에서도 이러저런 이야기를 잘 나누는 우리 모자를 보고 엄마는 후회가 많다고 늘 이야기한다. 오빠가 중학생이 되면서 안된다고 한게 많아 그 때부터 오빠의 말문이 닫히고 대화를 않하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그 때는 다들 그렇게 키웠다고 했다.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딸 바보였던 아빠 덕분에 나는 뭐든 원하는 건 다 했던것 같다.


처음 부모가 되면서 정답을 알고 키운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늘 새로운 일에 학습자의 태도로 임했던 것이 나를 좋은 엄마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여러권의 책을 읽었다. 특히 법륜스님의 <엄마수업>은 나의 엄마 지침서와 같았다. <들어주는 엄마>라는 책도 기억이 난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내 답이 앞서려는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 때마다 내 입을 틀어막으며 하나둘셋을 마음속으로 세었다. 아이에게 질문하고 답까지 내가 할거라면 물을 필요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스무살이 될때까지는 내가 보호자이니 내 말을 들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원이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가지는 불안한 마음을 들어준다, 그럼에도 해 보겠다는 정원이에게 용기를 준다. 지금까지 중요한 모든 결정은 정원이의 몫이었다. 인문계 진학도, 체육 입시 준비도, 여자 친구와의 이별까지도 정원이의 결정을 들어주는 엄마로 옆에 있었다.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정원이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한 결정이 바른 결정임을 확인받고 싶어서였고, 용기를 얻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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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가 성인이 될때까지 1년의 시간이 남았다. 스무살이 되면 우리는 이별하기로 했다. 보호자로서의 엄마의 역할을 끝내기로 했다.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서 독립하고 같은 시대의 살아가는 파트너가 된다. 내년 여름에 산티아고를 함께 가자고 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헤어져서 각자의 여행을 할 것이다. 지금과 그때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중요한 결정을 할때면 옆에서 들어주는 엄마로, 친구로 동지로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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