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엄니

음해하는 날들

by Anand

난 음언니의 대부(代父)를 자처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처한다'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처했다'라고 보는 것이 낫겠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체감하는 터울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물리적 터울인 나이 차이는 4살로 똑같아도 정신적, 상황적 터울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음언니의 시간은 계속 멈춰있는데, 나와 부모님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간다. 부모님은 점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한편 나는 아빠 마음이 돼간다. 건강관리도 잘해야 할 것 같고 돈도 넉넉히 벌어야 할 것 같다. 해줄 수 있는 건 다해주고 싶지만 다행인지 별로 바라는 것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 착한 딸, 음언니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죽고 싶다.'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엄마도 종종 유쾌하게 그런 말을 한다. 그렇게 되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쾌하게 말한다 한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한편이 씁쓸한 말이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해도 유쾌하진 않다. 불편한 자녀가 살아갈 걱정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엄청난 슬픔을 덮기는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슬픔이 더 큰 슬픔으로 덮어진다는 건 먹먹한 일이다.

난 대부가 되기로 했다. 부모님이 음언니보다 하루를 더 살긴 힘들어도 나는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음언니를 보내주는 연습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동생이자 나의 대모(代母)인 ‘음엄니’를.

음언니의 대부가 나라면 음언니는 나의 대모(代母)다. 이 엄마는 해주는 건 없다. 다만 하게끔 한다. 우선 건강관리를 하게끔 한다. 음언니보다 하루는 더 살아야 하면 꽤 건강해야 한다. 대부분 집 안에만 있는 음언니에 비해 아무래도 바깥 활동을 하는 나는 미세먼지도 음언니보다 더 많이 마시고,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는다. 가끔 폭식도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술도 마신다. 보기엔 저래도 다행히 음언니의 전반적인 건강은 좋은 편이다. 음언니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려면 사실 지금보다 몇 배는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 나다.

또 음언니는 나를 착하게 살게 한다. 기질적인 문제인지는 몰라도, 난 간혹 일탈과 반항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더 심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바뀌었다. 대모(代母)의 영향이다.

스스로 너무 실망스럽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때가 있다. 가족이나 연인에게도 말하기 힘든 일. 혼자 속으로 앓다가 병이 되는 일. 보통 다 받아주고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인 엄마에게 말한다. 음언니다. 가끔은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말했다간 누군가 안다는 그 자체로 자괴감의 늪으로 빠질 것 같은 일들이거나, 가까운 사람이 걱정할까 봐 말하기 주저하게 되는 것들. 이런 것들을 음언니에게는 조용히 털어놓을 수 있다. 별 반응은 없는데도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어떤 훈계와 가르침, 또는 동정과 연민보다 좋은 처방이다.

음언니는 가만히 들어준다. 사실 듣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어 준다. 엄마도 하루 종일 집에 있진 않은데, 음언니는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그래서인지 때로는 엄마보다 엄마 같은, 집보다 집 같은 ‘음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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