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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Dec 31. 2020

시간이 없지만 그 조각을 모아 바지런하게

김성광,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내가 쓴 책인가..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둘러보고 나온 것 마냥 절절한 공감의 바다를 이룬다. 일과 육아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어느 아빠의 이야기.


"결혼을 했고 아이도 태어났다. 아이는 모유도 분유도 이유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지만, 무엇보다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랐다." - 10 p.


아기를 낳고 기르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부족함이 있다. 체력의 부족, 인내심의 부족도 있겠지만.. 나에게 제일 부족한 건 내가 운용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이었다. 저자도 그런 아쉬움을 품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저자는 온라인서점에서 일을 한다. 일하는 분야에서 좀더 노력하고 싶다. 하고 있는 일보다 하고싶은 일이 더 많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책들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아기가 있고 가정이 있다. 그는 늘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칼퇴를 한다. 칼퇴 후에는 아이를 돌보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일과 가정 모두 그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도 소중한 것들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이 두 날개를 잘 돌봐 안정되게, 그리고 더 높이 날고 싶은 욕심이 아주 공감이 됐다. 조금씩 조금씩 모으는 조각 시간들로 나만의 시간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비슷했다. 그래서 한장 한장 소중히 읽었던 책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일과 가정 속의 나의 위치를 모두 잘 가꿔내고 싶은 욕심, 생각보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느끼며, 이런 상황이 나뿐만이 아님에 또한번 위로를 얻는다. 이 '선배님'은 그런 고민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시간을 만든다. 거기에 지하철에서 모은 시간을 또 이어 붙인다. 자신의 숨을 쉴 시간, 자신이 성장하는 시간을 그렇게 모아 간다.


육아를 하다 보니 아기 낮잠 자는 시간, 아기 밤잠 자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이 시간에는 전화기도 잘 안 만진다. "내가 어떻게 얻은 내 시간인데!" 하며. 나는 주로 이렇게 아기가 자는 동안 내가 성장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시간사용 바인더에는 아기가 자는 시간 동안 30분 단위로 한 일들이 나눠져 있다. 하고싶은 게 많아서 쪼개고 쪼개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워도 그간의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되도록이면 지켜내고 싶은 자의 발버둥이랄까.. 아기낳기 전부터 아기가 생기면 내 시간이 없어지는 게 제일 힘들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온 터라 더욱 치열하게 붙들어 온 것 같다.


다른 엄마아빠들은 언제 자신만의 시간들을 모으는지, 어떤 방식으로, 또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모든 위치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엄마아빠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깊은 밤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서점원으로서 책의 '제안'을 꿈꾸는 프롤로그 내용에서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독자들에게 필요할 책, 연계시켜 소개하고픈 책, 반대되는 내용의 책 등 꼬리의 꼬리를 물고 책을 제안하고자 하는 저자의 글에 내 심장이 쿵쾅쿵쾅하는 이유는 뭐지.)



▲ 추천하는 대상

- 일과 육아 속에서 나의 시간을 잃어버려 어딘가 텅빈 것 같은 사람.


▼ 비추하는 대상

- 그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자기계발적인 방법이 궁금한 사람.

- 서점인의 이야기가 깊이 궁금한 사람.(부제가 '10년차 서점인의 일상 균형 에세이'이지만, 서점인으로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 남겨두기


"나는 '물건으로서의 책만 배송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를 계량할 수 없는 '제안'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는 생각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 이어질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 8 p.


"먼 미래의 무엇을 위해 근면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짧은 시간들이라도 최대한 이어붙여 바지런하게 활용하고 싶다." - 29 p.


"궁극적으로 나는 개브리얼 제빈의 소설 《섬에 있는 서점》에서, 서점 주인인 A.J. 피크리가 경찰관인 램비에이스 소장의 독서 취향을 확장시킨 것 같은 일에 매혹된다. 나의 일이 누군가의 독서를 확장시키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삶이 보다 두터워지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 34 p.


"지하철은 이런 순간들을 내게 선물하며 피곤에 전 나를 말끔히 씻고 탁탁 털어 회사 앞에, 집 앞에 단정하게 놓아준다.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나는 작은 빛을 발할 수 있다. 지하철은 땅 아래(sub) 있어서 subway지만, 내겐 일과 육아 외에도 필요한 시간을 대체(sub)해줘서 sub-way다." - 44 p.


"인생을 구성하는 각각의 삶에 어느 정도는 균형 있게 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 물론 집안일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일도 있고, 아이와 놀면서 하루 피로가 풀리기도 하지만, 그 일로 삶을 빼곡하게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온 자아는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다. 그에게도 시간을 주어야 한다. ... 내가 새벽의 습관을 만드는 이유다.

시간이 생긴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책 몇 쪽을 읽고 난 다음 마시는 새벽 공기. 해야만 할 일을 잊고 다른 무언가에 오롯하게 몰입하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 67 p.


"다만 나는 내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삶'을 '선택과 집중'보다는 '적절한 밸런스'라는 관점으로 대하고 싶다.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대단히 잘할 때보다,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다. 일에, 가족에게, 나 자신에게 시간을 고루 들이고 싶다." - 69 p.


"타인의 고통에 관해 생각하다가,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워하다가, 부끄럽게도 생각은 자기만족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는 내가 슬쩍 괜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고통조차 자기만족의 근거로 삼아버리는 무례를 내 안에서 저지르곤 한다. 이 무례를 자각하는 순간 다시 예를 차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무례라는 걸 인식하며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자신이 또 흡족하다. 이쯤 되면 내가 과연 온 마음으로 공감하긴 했는지, 내게 정말 변화가 일어났는지 의심스럽다. 내 눈물이 의심스럽다." - 102 p.


"그러니까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여부로 판가름할 수 없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맑은 하늘을 살 수는 없다. ... 가족 바깥의 많은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대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달성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체득케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 아닐까. 가족의 구성원임을 감각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임을 자각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시야는 아이나 내 가족에게만 고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 150 p.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모습뿐 아니라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모습도 바로 옆에서 목격한다. 그런 부모를 통과해 결국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깊은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고민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상찰해보는 데까지 다다라야 할 것 같다." - 176 p.


"아이들은 부모들의 무의식적인 태도로부터도 배운다. 막연하게나마 조금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과 그러면 안 되는 사람에 대한 감을 잡는다.

사회규범을 아이에게 전수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다. 아이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깊이 성찰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이 만들어온 자연스런 태도들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수해도 괜찮은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좋은 부모란 사회규범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사회의 전령'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경계하고 성찰하며 아이에게 전하는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 - 178 p.


"제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더라도, 바다의 시대를 꿈꾸며 최근 시장 흐름과 거리를 둔 책을 읽고 추천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고객 데이터에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중요한 세상의 흐름에 대해 책을 추천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나는 서점엔 계속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자기 일을 오래 갈고닦은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 198 p.


"우리 딸 지안아, 정말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빠가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진지하게 점검하게 된 것은 너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나를 바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너를 힘껏 사랑하는 만큼 힘껏 노력하고 싶다." - 20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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