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품명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영 Oct 08. 2021

시어머니의 원피스

원피스는 무죄


언젠가 집안 행사에 필요한 한복을 맞추러 시어머니랑 함께 간 적이 있다.


다음날 한복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치수를 잘못 잰 것 같다고, 어머니거는 팔이 터무니없이 길고 내거는 유난히 짧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치수가 맞을 거라고 그냥 적힌 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체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맞춘 한복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잘 맞았다. 이렇게 우린 정반대의 특이 체형을 가진 고부간이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젊은 시절 입었던 원피스를 세 벌, 씩이나 나에게 물려주셨다.


고쳐 입으란다. 가장 비슷한 체형인 하나뿐인 딸(시누)에게 주는 게 어떻겠냐고 거듭 권해 보았지만,… 내가 입었으면 좋겠단다. 성품과 신념이 깃든 나름의 의도를 알기에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딸이 가져가면 남의 물건이 되는 거고 며느리가 입어야 보존이 되는 거라는 그 시대적 사고로 똘똘 뭉치신 분이니까.  원피스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강요를 하는 어머니, 그렇게 어머니 같은, 어머니의 (나에겐 무지) 큰 원피스가 왔다.


들고 온 원피스들을 높이 걸어도 보고 바닥에 눕혀도 보았다. 정말 수선집에 들고 가 고쳐보겠다고  치수를 가늠한 건 아니다. 달갑진 않지만 오래된 원피스에 대한 예의?로 살펴보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어머니의 세월, 수많은 마음이 따라온 물건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전의 호피무늬 가방처럼 보기만 해도 불편하여 둘 곳을 못 찾아 집주인인 내가 오히려 좌불안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피스들은 세련되진 않지만 곱고 단아 했다. 페이즐 무늬의 군청색 비단, 가지 색 벨벳, 검은색에 살짝 붉은 와인 빛이 도는 레이스 천 불망, 요즘 기성복에서는 보기 드문 옷감들로 만들어졌고 디자인도 독특해 자세히 보면 소매, 목 등 곳곳이 양장점 주인의 솜씨가 잔뜩 배여 있어 작품 느낌마저 든다. 어머니 옷이지만 전혀 어머니 인생을 닮지 않은 원피스들! 마음껏 입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집착으로 변해 나에게 까지 온 것일까. 저런….


팔십이 넘은 지금도 제사를 고집하고 세끼 밥을 차려내어야 하는 남편 시집살이(건강이 죄;;;)를 여전히 하고 있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말해 본들 무엇하랴. 무서운 남편, 겉도는 아이들 틈에 부엌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 시절 외출이라고는 아이들 학교 행사, 일가들 모임, 친정 나들이 정도였을 것이다. 불행히도 어머니는 마음을 나눌 친구가 그때도 지금도 없다는 걸 30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결과 짐작하게 된다. 잦지 않은 바깥출입은 사람들 눈에 민감했던 어머니가 더 외출복에 신경 쓴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정신없고 구질구질한 생활의 냄새를 풍기면 안 되니까.


본인 말에 의하면 큰아들(운)이 입학하던 해 처음으로 돈을 들여 옷을 사 입었다 한다. 이후 양장점에서 가물에 콩 나듯 때가 되면 옷을 맞춰 입었지만 다음 때랑 틈이 너무 길어 변한 몸과 유행으로 전에 것은 다시 입을 수 없었고, 그렇게 팔십 평생 한 번밖에 입지 못한 맞춤옷들이 옷장에 차곡차곡 모였다. 채소 담은 비닐봉지 하나 허투루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 생활 습관을 보면 돈 들였으나 애용하지 못한 그 옷들은, 동지이기를 원했으나 길들이는데 실패한, 그래도 큰며느리인 내가 고쳐서라도 입어야 할 유효기간이 한참 남은 것들이었다.


몸서리치게 싫고 부담스러운 건 바로 그 마음이다. 어른으로 대접받으면서 집안 대소사, 생활,  심지어 종교까지 공유하며 자기의 색깔을 나에게 입히려는 그 마음.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랐고, 강하게 거부했고, 이젠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꿈을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젠 분노보다 연민이 앞서 제발 가족들한테 벗어나 이젠 어머니를 위해 살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팔십 넘은 노인한테 해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럼 자기 모습을 찾는다는 것, 진정한 어머니 모습은 어떤 것일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염두한 건 내 기준일 것이고 어머니 인생은 어머니만이 알 것이다.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가족들 속에서 찾는 것,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어머니가 행복하면 그만인데 날이 갈수록 미련남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더 바쁘고 더 챙기고 더 동동거린

다. 이젠 그 모습마저 받아들이는 게 들어온 자식이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원피스와 세트인 짧은 실크 스카프를 가디건 위에 둘러 보았다. 요즘같은 어중간한 날씨에 안성맞춤인 듯 따듯하고 포근했다. 지인 말이 니트안에 실크 블라우스를 입으면 패딩만큼 따뜻하다던데... 이번 겨울을 위해 한 번 고쳐볼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 오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며 어머니 마음과 원피스가 조금 분리된 것 같긴한데, 마음은 형체가 없어 언제든 변하기 쉽다.


추석 때 갔더니 이번엔 간격이 촘촘한 얼룩무늬 주름치마와 황토색 모직 롱치마를 꺼냈다. 또 고쳐 입으란다. 어머니, 이 디자인 치마를 입고 갈 곳이 없어요. 정중히 거절했다.

집에서 입어도 되는데...  

꺅!...



정품명품 메거진은 취향과 추억이 담긴 정이 가는 물건을 소개하려 시작했는데, 간만에 들고 나온 게 내것이 아닌 내게로 온 원피스를 소개하려다 결국 물건의 주인인 시어머니가 나오고 말았다.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는 영원한 화두다. 따로 똑같은 양면을 지니고 있기에. 그리고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에 깃든 누군가의 마음도 소중하기에 정품명품 대열에 올려 본다. 거기다 세상에 하나뿐인 고운 옷이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넌, 어디서 왔니?(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