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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Sep 22. 2022

하루 여행

이슬람 모스크 가이드 투어


조식은 빵과 보리수 쨈, 사과 그리고 맑게 내린 커피 한잔이다. 어제 이슬람 거리를 걸었고 이슬람 사원에서 코란을 유심히 보았으며 벽면 가득한 아라베스크 문양에 감탄하던 중, 들려오는 노래 같은 아잔 소리에 조용히 기도실을 빠져나와 근처 카페에서 터키식 커피에 곁들인 바클라바를 먹었다.


 오후 2시 30분경 이태원역 3번 출구에 모였다. 젊고 예쁘기까지 한 가이드는 목에 거는 투어 전용 수신기를 하나씩 건넸고 각자 가자고 온 이어폰을 꽂으니 가이드의 목소리가 어느 위치에서든 선명하게 들린다. 가이드도 일정한 톤으로 편하게 진행했다.

 이번 투어의 계기는 집에서 자는 여행을 하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지만 오래전 프라하 시청 앞 광장에서 경험한 팁투어 때문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듣는 문화, 역사 이야기는 전율이 일 정도로 좋았고 풍경 너머 도시를 깊게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우리 교민임에도 까무짭짭한 피부에 양갈래 땋은 머리가 흡사 인디언 여인 같았던 가이드는 설명 도중 마른기침을 자주 했다. 건조한 여름 날씨와 종종 끊어지는 마이크음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해야 하는 상황이 무리였던 것이다.

 지금은 가이드 눈과 동선에 집중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다니며 설명을 들으니 여행자도 훨씬 편하여 격세지감? 까지 들었다면, 오랜만에 세상 나온 티를 너무 내고 있나.


  오늘 여행지는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이슬람 서울중앙성원까지 이르는 이슬람 거리다. 약간 오르막 길을 천천히 걸으며 홈그라운드에서 색다른 문화를 접해본다.

 음식점과 식품을 취급하는 가계마다 ‘halal (할랄)’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슬람 율법 아래 허락된 음식이라는데, 금지된 음식’ haram(하람)’을 보면 의미가 더 선명해질 것 같다. 술, 마약류 같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돼지고기, 개, 고양이 등 동물, 그리고 자연사했거나 부적절하게 도축된 동물의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온 세계 문화가 뒤섞이고 뭐든 상품화되는 세상에서 얼마나 지켜질까 의문이 들었지만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식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권이 인식되고 있는 요즘, 이미 이슬람 율법은 그러하여 식생활이 사람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믿음이 다가왔다. 세계적으로 할랄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인증을 받기 위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옷과 카펫을 파는 가게 앞에선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억압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히잡을 비롯하여 차도르, 니캅, 부르카 등 어디까지 가리느냐에 따라 여러 이름들이 있는데,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현대 이슬람 여성들은 그런 옷들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슬람 사회도 다양하여 히잡 금지령을 내린 곳에서는 오히려 입을 수 있는 권리, 자유를 달라고 한다니 사람들 사이 일이 한 모습일 수는 없는가 보다. 남성들의 일부다처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전쟁으로 남성 수가 적어 일어난 사회현상?이었는데, 남성 쪽에서는 여러 명에게 똑같이 사랑과 물질을 줘야 하는 율법 원칙을 따르기 부담스러워 오히려 꺼리는 일이라고.

 이런저런 이슬람 사회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사회를 규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조금씩 알아간다는 건 더 모르는 일이 많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이슬람교는 기독교에 비해 낯설지만 훨씬 오래전 우리에게 전파된 문화로 천 년 전으로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경주 괘릉에 있는 서역인의 석상은 그것을 말해주며 삼국유사 설화에 나오는 처용도 아랍인이었다는 이야기를 국어시간에 들었지 않았던가. 불교가 득세했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완전히 뿌리 뽑혔다는데 다시 들어온 건 놀랍게도 6, 25 전쟁 때 파병된 터키군이 만 오천 명이나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리고 70년대 중동으로 간 건설 근로자들 중 누군가들도 전도되어 돌아왔을 것이고 이어진 석유파동 극복을 위한 친아랍 정책으로 마침내 여기 이태원에 국내 최초로 이슬람 사원까지 세워진 것이었다.

 결국 또 잊게 될 TMI들을 들으며 걷다 보니 파란 하늘 높이 하얀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오르막을 걸어 살짝 모퉁이 돌면 코발트색 테두리에 파란 아라베스크 꽃무늬로 장식된 산뜻한 정문이 나온다. 한 발짝 들어서니 본당으로 올라가는 두 갈래 입구가 있었는데 왼쪽이 평범한 계단이라면 오른쪽은 마치 하늘길인냥 어둡고 굽은 오르막 끝에 빨려들 듯 살짝 보이는 하늘빛이 아득하고도 멋스럽다. 우리 일행은 계단으로 올라, 마침내 확 트인 사원 마당 감나무 밑 벤치에 이르렀다. 귀는 가이드 말을 접수하고 있었지만 눈은 이색적인 사원 건물을 올려다보기도 거대한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가이드가 폰으로 들려준 성품이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무아띤(기도시간을 알리는 사람)의 아잔 소리(기도 시간을 알리고 독려하는 말들)가 귀에 유난히 꽂혔다. 음악 같기도 그 자체가 기도 같기도 한 편안한 울림에 잠시 평화를 선물하는 장소의 의지가 다가왔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속삭이는 듯한 가이드 말을 듣고 있자니 실제 그곳의 아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이다. 우리는 신자들을 위해 조용히 그 장소를 빠져나와 마지막 코스인 사원 내 카페로 향했다.


 터키에 살아봤다는 가이드가 추천한 간식 바클라바와 터키식 커피는 색다른 맛이었다. 추출하지 않고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 설탕을 넣어 먹는 방식이라는데 쌉싸름하면서도 익숙한 맛은 아니었다. 달달한 페스츄리 같은 바클라바와 섞이니 괜찮았지만… 친구가 말한 터키 커피는 콩가루가 들어간다던데 그럼 좀 구수해지려나.

 처음 만났고 곧 헤어질 사람들이었지만 먹을 걸 앞에 놓고 얼굴을 마주하니 분위기가 화가애애 해지면서 서로 가져온 간식도 권하고 이야기도 오갔다. 모인 구성원들에 비해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이맘’이 되어준 가이드가 있어 가능한 시간이었다. 이맘은 이슬람의 지도자를 말하지만 종파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꼭 거창한 지도자가 아닐지라도 현지에서는 나보다 어느 부분을 많이 알아 이끌 수 있다면 이맘이라 부르는 게 일상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이드는 이맘이었고, 오늘날 이맘이 많은 이슬람 사회는 여느 사회처럼 관습을 조금씩 벗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 하다. 꾸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걸 절대 허용치 않았지만 지금은 여러 언어 버전이 있기도 하다니까.




 투어를 마치고 이태원 거리를 조금 어슬렁 거리다 청량리역으로 이동, 무궁화호를 타고 30분 만에 양평 집으로 왔다. 앞에서 언급한 조식은 직접 만든 쨈과 내린 커피로 하루여행 다음날 집에서 먹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집만 떠나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체질이 되어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일은 호기심과 의욕에 반해 괴로운 일이었다. 조금 적응될 만하면 돌아와야 되는 슬픈 현실. 그래서 가끔 망상을 한다. 잠은 집에서 꼭 자고 낮에는 어디든 낯선 곳에 갈 수 있다면? 꿈이 현실화되려면 하루 여행밖에 없어 한번 시도해 보았다.

 그럼 집에서 잤다고 생각대로 모든 게 편안했을까. 오랜만에 나간 도시는 복잡하고 시끄러웠고, 9월의 습한 더위는 한여름보다 오히려 더한 것 같았고, 오르막길을 걸으며 가이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예전 같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긴장감이라도 있지, 집이라고 완전히 뻗어 다음날 이벤트, 내가 차려야 하는 조식이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집 떠나서까지 안락함을 기대한 생각부터가 그릇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또 때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이 들썩거릴 거라는 걸 안다. 숲에서 나와 떠돌며 살았던 그 시절 인간의 후예인 우리들은 어디든 떠나야 비로소 떠나온 곳이 보이고 그곳에서 꼼지락거리던 내가 보이니까.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사원 정문 정면에 있던 글귀다. 빠른 세상에 적화된 젊은 여성 가이드가 전해준 이슬람 이야기는 비종교인인 나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다가왔다. 뭇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과 더불어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하느님이며 그 마음을 키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무함마드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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