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by 제이켠

나는 자다 깨는 데에는 정말 프로(?)인데 지난밤에도 애매한 시간에 깨버렸다. 오전 네 시에서 다섯 시 즈음이면 그렇지 않나. 잠들자니 정신이 또렷해지는 중이고, 깨자니 잠이 조금 아쉽다. 그럴 때 어떤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딸깍 누르면 스륵 하고 잠들었다가 깨는. 그런 애매한 시간에 잠이 깬 상태처럼 이도 저도 아닌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회사에 취직했을 초반의 얘기다.

나는 20년 동안 음악을 하며 살아와서 나름의 관성이라는 것이 몸에 붙어 있었다. 아직 내 몸의 바이오리듬이랄까, 뭐 그런 것들이 음악을 하던 삶에서 직장인의 삶으로 옮겨오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잠자는 버튼처럼 마인드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물밀듯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참 곤란하다. 내 업무가 허둥지둥할 때, ‘이걸 왜 놓쳤지?’ 싶은 부분을 놓쳐버렸을 때. 사회인과 음악인 가운데 어느 불분명한 구역에 붕 떠 있는 그런.


음악 하는 친구들의 SNS를 보면 재미난 일들이 많은데, 파티에서 멋지게 공연을 한다거나 연차 걱정 없이 여행을 즐긴다거나 그런 것들을 보면 새삼스럽다. 한산한 평일의 삼청동, 맛집에 줄을 서지 않을 수 있는 시간대에 활동을 하는 것. 불과 얼마 전까지 나에겐 일상이었는데. 써 놓고 보니 왠지 서글프군요. (머리를 긁적 대며)

연차 걱정없이 바다에 갈 수 있었을 때의 나


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요즘은 이런 걸 “I”라고 하던데 그렇게 치면 나는 슈퍼 “I”형 인간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교 모임을 한다든지 사람을 만날 일이 잦지가 않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무대에 선 거지. 음,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혼자가 편한가? 뭐 그런 것도 아니다. 이렇듯 나는 성향마저도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굉장한 동질감이 들 것 같다.


그런데 불현듯

‘이것도 나름 재미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참 외로운 게 맞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자유롭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회사에서도 업무 종류를 다양하게 맡고 있는 편이다. 홍보팀, 영업팀, MSO팀. 그래서 어느 팀 소속인가? 생각해 보면 음… 전부 다 인가 싶다가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모호함이 삶의 전반에 흩뿌려져 있는 게 예전에는 불안한 점이었다면, 이제는 장점으로 생각하려는 편이다. 뭐, 여러 기술이 있는 건 좋은 거니까.

• 뭐 하나 제대로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아? -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시비쟁이는 자기 멋대로 말을 거니까 그런가 보다 해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일본의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얼굴을 좋아한다. 선과 점 몇 개로 ‘아, 그렇군요’ 식의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한다고 느낀다.


만약에 누군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느낌이 두렵다면, 그의 그림을 보면서 “아, 그렇군” 하고 넘겨보는 게 어떨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