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수필집, 강대선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출간

by 해드림 hd books

서정적 묘사의 예술성을 지향하는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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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묘사, 서정, 문학성 또는 예술성 그리고 사유가 그것이다. 여기에다 한 가지 더 붙인다면 구성이다. 이 키워드들은 문학으로서의 강대선 수필, 즉 수필의 예술적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역시 서정이 기본이 된 묘사이다.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대부분 작품이 서정적 묘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정이란 주어진 사물에서 환기된 느낌과 사유 등 감정과 심리적 반응을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정서는 인간의 희로애락 등 주어진 사물에서 환기된 서정의 구체적 표현이다. 서정성은 문학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정성은 수필의 생명인 문학성, 즉 예술적 생명을 부여하는 기본요소인데 강대선 수필가의 이번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은 수필의 예술적 생명성을 치열하게 추구하는 작품들로 엮었다.

이제 갓 수필을 쓰기 시작한 수필가들이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다소 연륜 있는 수필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숙성시켜야 할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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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언제까지나 봄을 겨울 기둥에 묶어둘 수 없었을 것이다. 때가 되자 신은 봄을 묶었던 끈을 잘라 유연하고 탄력이 넘치는 골목으로 풀어준다. 탄력의 유전자는 일렁이는 물결에서 왔는지 모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서 봄의 유전자를 핀셋으로 채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고양이처럼 자유를 누리며 도시의 봄밤을 어슬렁거리고 싶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맛보는 녀석들의 발톱과 날카로운 울음소리, 그리고 일자로 세워진 눈동자가 어른거린다.

봄이면 고양이는 더 말랑말랑해진다. 털을 쓰다듬으면 손끝으로 봄의 온기가 전해진다. 탄력이 넘치는 녀석들은 도시의 어둠 속으로 봄볕을 끌고 사라진다. 도시의 은밀하고 구석진 곳에 봄볕으로 집 한 채 지어놓았을 것이다. 철새들에게 신호기를 심어 이동 경로를 알아낸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바코드를 찍어 이동 경로를 알고 싶다. 바코드를 찍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고양이 바코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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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자신의 사물을 육안(肉眼)이 아닌, 영안(靈眼)이나 심안(心眼)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묘사로 천착해 가는 강대선 수필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고 작은 개미의 더듬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묘사해 내는 느낌을 받는다. “때가 되자 신은 봄을 묶었던 끈을 잘라 유연하고 탄력이 넘치는 골목으로 풀어준다. 탄력의 유전자는 일렁이는 물결에서 왔는지 모른다.”에서 보듯이, 강대선 수필 문장에서 등장하는 제재(題材) 하나하나는 비범한 선택이 아니라, 지극히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 제재를 연결하여 서정적 묘사로 그려내는 탁월한 필력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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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들 중에는 ‘묘사’를 어렵게 이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서술이 스토리식 기술이라면 묘사는 느낌이나 심상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물론 스토리식 기술로 이어진 수필이라고 하여 예술성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묘사가 예술성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묘사란 사물이나 상황 등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느낌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객관적 이해나 지식 전달 목적의 서술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캡쳐한 인상과 느낌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자신과 동일한 체험을 가질 수 있도록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대상에서 일으키는 심리적 정서나 정신적 심상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처럼 감각적이고도 구체적이다. 대상의 색채, 촉감, 향기, 소리 등 제반 감각작용의 활용, 구체적인 상황 제시, 참신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등 효과적인 묘사를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 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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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선 수필의 예술성


[여자가 몸을 돌려 눕자 처진 젖가슴이 살짝 드러납니다. 내가 하도 많이 만져서 내 것인 줄 알았던 젖가슴입니다. 부드럽고 몽글한 빵 같았지요. 나는 매번 여자에게 만지게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지요. 여자의 가슴은 이제 벽에 걸린 시래기처럼 처져 예전의 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이 사실이 못내 슬픕니다. 여자의 가슴은 내 마음이 슬프고 괴롭고 외로울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치유의 밀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한테 꾸중을 심하게 듣는 날이면 그 밀실에 숨어 울음을 넘겼으니까요.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때에도 나는 그 밀실에 들어 온전히 내 편이 되어 준 여자의 온기를 느꼈으니까요.

여자의 숨소리를 듣는 이 시간이 더 고요해집니다. 이상하기도 합니다. 빗소리가 가득 찬 이 밤이 이토록 고요할 수 있다니요.[ -[그 여자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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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향기로워지는, 어느 말보다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자기’라는 말은 실상 우리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자기’를 갖고 있는가. ‘자기’로 불렸던 기억을 지니고 있는가. 지금도 ‘자기’로 살아가는가.

갈기를 세우고 떠나간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영혼들이 바다와 우주를 돌아 나에게 밀려들고 있다. 나는 밀려드는 해마와 함께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빗방울이 된다.

기억은 가슴에서 봉인을 풀고 그들의 이름과 만난다. 할머니도, ‘쫑’도, 아픈 죽음도 환희로 빛나는 순간도 모두 갈기를 세운 기억 속에 살다가 죽는다.

차를 몰고 해안을 돌아 나오면서 해마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바다 저 멀리서부터 짙어진 먹구름이 밀려온다. 삶은 앞으로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련과 고통으로 번개 치는 저편에서 달려오는 내일을 생각한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자기’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기대하고 사랑하고 희망하는 이름이 ‘자기’라면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된 내일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설레는 ‘자기’일 것이다.

해변에 도착한 해마가 크나큰 소리로 할머니와 쫑과 그늘진 기억을 쏟아놓더니 모래처럼 부서진 기억을 한 알 한 알 어루만지며 바다로 돌아가고 있다.]-[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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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속의 꽃에 대한 상상을 이어간다. 입속에 핀 꽃들도 바람에 흔들리고 비와 눈을 맞으며 꽃대를 세울 것이다. 어쩌면 꽃대 하나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꽃은 미지다. 저 겹을 열면 어떤 향기 어떤 빛깔이 나올지 모른다. 예전에 봤다고 같은 꽃이 피었다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모든 꽃은 다르다. 꽃을 본다는 것은 미지를 향한 모험이다. 이 붉은, 혹은 청색과 보라와 흰 빛깔을 어디에서 감아올렸을까.

봄볕과 흙의 고요와 우주의 별이 주된 재료였을까. 이 재료로 방아를 찧고 손톱에 봉숭아 꽃잎을 감듯 칭칭 감아 물들게 했을까.

미지의 세계가 열리면 우주가 놀라 한 번 휘청할 것이다. 맛있는 고기 맛에 꽃을 피우는 것보다 우주를 물들게 하는 미지의 꽃이 내 영혼을 더 자극한다.

꽃은 영혼의 창을 열 수 있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듯 경이로움에 취해 웃는다. 향기를 맡으려 코를 킁킁거린다.] -[나비가 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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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일부 예시를 세 개씩 연달아 올린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수필의 예술적 생명성이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에는 어느 한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는 ‘수필의 예술성’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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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다. 상상은 문학의 필수조건이다. 문학은 상상력의 힘을 빌려서 언어(문자)로 쓰여진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작법의 기본 자체가 상상이므로 그것만으로도 예술의 기본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수필은 사실의 세계가 기본이며 이를 함부로 배반할 수 없으므로 운명적으로 비문학적 비예술적 장애조건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수필은 이런 조건이 타 장르와 다른 수필의 특성인 이상 이 개성의 바탕 위에서 수필 고유의 예술의 집을 지어야 하며, 그것을 수필의 전형으로 삼아 나가야 한다. 즉 예술의 가장 본질적 조건이 이 상상의 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인 이상 상상력에 의한 수필의 예술성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예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에 의한 유추와 상상의 기법을 극대화해 나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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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김우종 교수는 수필의 문학성인 예술성 재고를 위해 ‘상상에 의한 유추와 상상의 기법을 극대화’ 해나가기를 강조한다. 강대선 수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허구를 배제하고 수필의 정통인 ‘사실의 세계’를 기본으로 삼으면서도, 잠재적인 ‘상상 기법’을 밑절미로 서정과 묘사를 좀 더 차원 있게 추구함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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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해드림출판사나 그 자회사인 <도서출판 수필in>을 통해 출간된 수필집 가운데 특별히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을 때는 ‘출판사의 자존심을 건다’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이는 독서 식감이 어느 책보다 뛰어난 책이 수필집임에도 유독 수필집에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우리나라 독자를 향한 안타까운 심정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다. 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이 역시 믿고 읽으며 독서 식감을 충분히 맛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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