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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기
by 김희영 Jan 08. 2018

시간이 흐르면 무뎌질 테니까


 그 어떤 것도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식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나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 차서, 나 아픈 것, 내 이기심이 공허한 공간을 메워서, 옆자리를 알아채지 못한 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동안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더 잘 하겠다는 말. 그게 반복될 걸 알아서, 끊어질 것 같은 줄을 애써 붙잡고 싶지 않았어. 그럴 바에야 놓아버리는 게 낫다고. 일찍 손을 놓는 것이, 네가 상처를 더 일찍 받는 것이, 네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끝내는 것이, 우리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


 그래, 나 이기적인 거 알아. 사실 나쁜 건 나야. 너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접어왔으니까. 작고 촘촘하게 접어서 보이지 않을 만큼. 네가 흔들어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이미 다 정리해서 작아진 마음을, 너는 정리할 틈도 없이 내가 갑작스럽게 통보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너는 늘 나를 내버려 둔 채, 너 좋을 대로만 있었잖아. 너 힘들 때만, 내 무릎에 기대 눈물을 흘렸잖아. 나, 네 옆에 그저 예쁜 인형으로 있고 싶지 않았어.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는 걸. 힘들 때 나도 네게 기대고픈, 나도 여자인걸. 내가 힘들어 네게 달려갔을 때 넌, 언제나 나를 외면하기만 했잖아. 넌 나 따위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도 없었잖아.


 울음이 터져버린 건, 너에게 미안해서가 아니야. 난 지금도 천천히 사랑했던 마음을 잊어가는 중이야. 갈라서자는 말, 그 뒤에 찍은 마침표가 내 턱밑을 서늘하게 맴도는 게 나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렸어. 언젠가 넌, 내가 잃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이었는걸. 너를 애타게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는걸. 아픈 널 지켜주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슬퍼하는 모습을 비추지 말아야 했어. 티 내지 않으려고 닦았어. 뺨이 빨개지도록 닦았어. 이 눈물 때문에 내가 너에게 돌아설 수도 있겠다고 착각해서 일말의 희망 따위를 심어버릴까 봐. 조금만 달래주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쉽게 생각해버릴까 봐. 슬프지 않다는 것을, 너 따위 다 잊고 홀로 설 수 있다는 차가움을 내비쳐야 했어. 매몰차게 널 밀쳐내야만 했어. 나 살려고. 이제 상처받으면서까지 숨 막히게 널 사랑하지 않으려고.


 나만 사랑하고, 나만 애끓고, 나만 슬픈 사랑을 이제 그만두고 싶어. 네가 미워서가 아냐. 내가 지쳐서야. 어떤 이유로든, 나는 이제 네게 가지 않아. 이유들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난 너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니까.


 다시는 네게 돌아가지 않아.


 그러니 차라리 나를 원망하며 살아. 그렇게 나를 지워가.


 오늘이 저물고, 내일이 뜨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날이 선 이 감정들도 조금씩 무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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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당신의 일기
1992년, 가을에 태어났어요.
공감을 읽고, 마음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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