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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Mar 13. 2024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윤규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봄이 왔어. 순이네 집에도 꽃들이 활짝 피었어.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개나리꽃 등등. 오늘은 순이네 밭 가는 날이야.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고개 넘어 밭 갈러 가시고 할머니랑 엄마는 쑥버무리를 찌셨어.

  "순이야, 할아버지께 새참 갖다 드리러 가자." 엄마가 순이를 불렀어.


 엄마는 함지박 이고 순이는 주전자 들고 자박자박, 타바타박 걸어가는데 돌담 위에서 다람쥐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돌돌돌돌 냇물 따라, 광대나물 솜방망이 꽃길 따라 막걸리 쏟아질라, 조심조심 가는데 뽕나무에서 들쥐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밀밭을 지나, 보리밭을 지나 할아버지 배고프시겠다, 자박자박 걸어가는데 보리밭에서 청개구리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마을길 따라 동구밖을 지나 아버지 목마르시겠다,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당산나무 옆에서 장승이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미나리꽝을 지나, 돌이네 못자리를 지나 쑥버무리 다 식겠다, 자박자박 걸어가는데 무논에서 백로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산기슭 고추밭을 지나, 더덕밭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산속에서 뻐꾸기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소나무 숲을 지나, 밤나무 산을 지나 이 고개만 넘으면 다왔다, 자박자박 걸어가는데 참나무에서 딱따구리가 물어.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잣나무 숲을 지나 밭에 다왔어. 순이가 신이 나서 "할아버지, 새참 드세요." 하는데 밭둑에서 송아지가 물어.

  "우리 순이 이제 오니?"

  무덤가에 둘러앉아 새참을 먹었어. 아버지는 쑥버무리를 들면서 "야, 맛있다." 할아버지는 막걸리 마시고는 "어허, 시원하다." 송아지도 젖을 빨면서 "메에메에, 맛있다." 이러는 거야.

  엄마는 빈 함지박 이고, 순이는 빈 주전자 들고 우리 아기 울겠다, 자박자박 타박타박 돌아오는데 멀리서 보리 피리 소리가 들려.

  "삐리리 삐리리, 우리 순이 어디 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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