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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Mar 28. 2019

임아, 갠지스를 건너시오

나는 죽는다. 나의 부모님, 형제, 친구들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와버렸어.” 작년 이맘때쯤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희롱과 거짓말이 판을 친다는 이야기만 믿고‘내 인도만큼은 절대 가지 않으리’ 다짐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땅으로 마음 한 켠엔 줄곧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한 나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갠지스강에서 보낸 며칠은 나로 하여금 어렴풋하게나마 인도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관광객으로서 갠지스강에 머물면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썩 많지 않다. 기껏해야 낡은 나무 보트를 타고 꽃 초인 ‘디아’를 띄우면서 소원을 빌거나, 힌두교 의식인 ‘뿌자’를 보거나, 화장터를 구경(?)하는 것 정도. 여행자로서의 미션을 완수한 이튿날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보트를 타고 일출 일몰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일이라면 일이었다.


운 좋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보트맨 ‘철수’를 만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도인들은 시바신의 머리에서 뻗어 나온 성스러운 강물로 영혼이 속죄 받아 윤회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그 덕에 한 쪽에서는 시체를 태워 강물에 뿌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몸을 씻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소, 개, 원숭이와 같은 동물과 성직자, 임산부 등은 대개 신과 가까이 있는 존재라 하여 화장조차 하지 않고 수장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오늘 밤 여기서 빤 이불을 덮고 자도 되는 걸까 염려될 정도였다.



물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재만 남은 화장터 가를 보트로 부유하며 유독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갠지스강을 찾거나, 가족의 유해를 들고 갠지스강까지의 머나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이 없는 이들은 사후에 갠지스강에 뿌려지기를 약속 받고 재산을 기부하기도 한다고 한다. 인도인들의 삶에서 죽음이 차지하는 무게, 존재감은 얼마나 될까. 이들의 생의 계획 안에는 죽음이 있다. 나의 죽음과 남편, 아내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친지의 죽음 그리고 친구들의 죽음.


생의 일부로서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계획하며 가까이에 두고 사는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죽음을 터부 시하고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내게도 죽음이란 분명 언젠가 다가올 일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모르는 체 하고 싶은 일, 두렵고 피하고 싶은 아직은 요원한 일에 다름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사고가 나를 지배하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이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져 생에 충실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하는 것을 한심하거나 철이 없거나 괴짜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는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을 외면하고 산다.


그런데 문득 원하는 죽음이 있고 이를 계획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어졌다. 나는 죽는다. 길어도 앞으로 60년? 내 남편도, 부모님, 사랑하는 형제, 친구들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다들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죽음의 모습은 무엇일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엔딩을 위한 하나의 스토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엔딩은 이러한 물음에 준비가 되어있을 때 보다 덜 당혹스럽고 만족스러운 방향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뭐 하러 기를 쓰고 사냐는 비관,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는 낙관, 어느 방향이든 상관 없다. 단지 원하는 죽음의 모습을 그리고, 나의 생의 계획 안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포함하는 것. 생의 순간순간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동아일보 2018.03.21자 게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80321/89197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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