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은 하고 있던 모든 업무들을 접어두고 강의를 다녀왔다. 그것도 제주도로.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5시에 기상을 해야 했는데,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분명 자고 일어났는데도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느낌으로 아침을 맞았다.
강의를 다녀오게 된 건 약속 때문이었다. 재작년에 강의요청을 했다가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던 곳에서 2년 전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이번에 꼭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보내왔다. 사실, 디자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진로교육을 하는 강사였다. 보통 강의를 업으로 하는 많은 이들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 앞에 서고 진행하고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몹시 긴장하는 편이다. 워낙 밝고 에너지가 많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는데, 실은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이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까지 더해져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무서웠던 것 같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모든 강의가 온라인화 되었을 때, 강의를 하면서 과호흡이 온 걸 느끼고 난 후로는 트라우마까지 생겨 긴장도가 더 높아지는 걸 느낀다.
솔직하게, 그래서 이번 강의가 취소되길 바라기도 했다. ‘죄송하지만 못하겠다고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의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넉넉했던 만큼, 부정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시간도 충분히 많았다. 내가 강의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서 본 적도 없을 텐데. 어떻게 당연한 듯 와달라고 하는 걸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제껏 내게 강의를 요청했던 모든 곳이 그랬던 것 같다. 간간히 먼저 들었던 곳에서 추천해 주더라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믿고' 불렀던 것 같다.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기까지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껏 여러 번의 진로전환이 있었지만, 이렇게 도망치듯 그만둔 것은 강사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나의 두렵고 떨리고 자신 없게 하는 생각들이 나를 덮쳐오는 것을 느끼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나 스스로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들을 온전하게 마주한 시간들 덕분에 비로소 강의에서 무엇을 전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가이드가 되기도 하는 이것을 ‘비전'이라 부른다. 비전을 통해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모양도 생긴다고 믿는다. 지금 나의 비전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숨겨진 포텐셜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정했다. 디자이너로서의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질문이 담긴 다이어리 만드는 일을 했었다. 내가 만든 다이어리를 써보고 긍정적인 변화와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피드백과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만큼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약간의 힌트를 제공해 준다면 누구나 자기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점이 지금의 비전으로 나를 연결해 주었다.
이번 강의는 ‘나의 오늘이 비전에 닿게 하라'는 주제로 전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찾고 정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비전을 찾고 난 후에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다시 또 무언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힘이 ‘나의 오늘'에 있다는 걸 지속해서 쌓아온 나의 날들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어제의 강의를 다녀온 후로, 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나의 비전에 더 가까워지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줄 일이 될 거란 생각에 벌써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의 강의는 처음으로 한 순간도 떨지 않았던 첫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