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 민주주의와 시민적 참여에 대하여

by 조경일 작가

공론장의 부재에 대하여


내가 대표로 이끄는 청년모임 피스아고라(Peace Agora)에서 지난달 세 번의 포럼을 진행했다. 포럼의 이름은 '북향민주시민포럼'이다. 먼저 피스아고라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평화를 뜻하는 영어 Peace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서 자유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장소인 Agora를 합친 말이다. 피스아고라는 시민의 토론장, 평화의 공론장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평화 공론장이며 동시에 통일 공론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피스아고라를 통일 공론장으로 설명한다. 내가 모임 이름을 이렇게 다소 거창하게 만든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었다. 분단이 만들어낸 고통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이 고통이 겹겹이 쌓이고 응축되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반도는 남북은 물론 동서로도 분열되었고 가족 내의 대화마저도 단절시켰다. 그야말로 '대화불능사회'다.


피스아고라는 경계에 선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정치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언어로 발화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장을 지향한다. 북향민, 이주민, 디아스포라 등 ‘내 이야기가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이들이 삶의 경험을 말로 바꾸고, 그 말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분단으로 경직된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경계인의 목소리를 주류 담론으로 승격하고, 이념적 갈등을 좁히고 평화를 넘어 통일의 비전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이런 목표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민주시민의 참여로 가능하다.


북향민주시민포럼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이 사회 정착을 넘어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성을 갖고 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기획했고, 포럼의 이름도 그래서 북향민주시민포럼이다. 포럼의 이름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다. ‘북향’은 북향민 정체성을 담았다. ‘민주’는 민주주의, ‘시민’은 말 그대로 시민이다. 다소 진부한 이름 같지만, 이유가 있다.


왜 '북향민주시민'인가?


지난해 12.3 계엄선포로 내란이 발생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말도 안 되는 국가 폭력이 하마터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할 뻔했다. 내가 더욱 우려하며 유심히 봤던 것은 계엄선포 이후 북향민 사회의 분위기였다.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북한인권운동을 한다던 탈북단체장들을 비롯해 보수적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북향민들이 계엄을 ‘계몽령’이라 옹호하며 목청을 돋우는 작태들을 보면서 절망스러웠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타협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미 오래전에 도출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불법적인 계엄은 이 모든 민주적 절차를 제거하는 폭력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북한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정작 주변의 인권을 존중하는 행위가 아닌 경우를 많이 봤다. 강경한 목소리를 낼수록 더욱 다른 인권을 너무도 쉽게 짓밟는 이중적인 태도를 무수히 목격했다. 독재를 경험한 북향민들이 한국에서도 여전히 국가 폭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날 정도다.


나는 북향민들이야 말로 두 체제를 경험했기에 이들의 장점이 분명히 크다고 생각한다. 두 체제의 삶을 경험적 자산으로 만들어 미래의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북향민들이 더욱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점이 되고 나아가 혹자들이 말하는 ‘먼저 온 통일’로써 가교(Bridge)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북향민들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계엄을 계몽령이라며 옹호하는 자들은 결코 민주주의자도 아니며 먼저 온 통일로 불러서도 안 된다. 내가 포럼의 이름을 북향민주시민포럼이라고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자기 스스로를 시민적 주체 인식하고 참여하는 북향민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주체성 확보를 위하여


첫 번째 포럼은 ‘북에서 온 청년 정치인 토크 콘서트’로 현재 국민의힘에서 정치활동을 해온 북향민 청년 김금혁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온 내가 함께 패널로 진행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 청년 정치인 토크라서 그런지 더 주목을 받았다. 보수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은 많아도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들 때문이다. 민주당 또는 진보정치를 지지하면 빨갱이라며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는 공격이 워낙 많아서 북향민들 중에 공개적인 진보적 목소리를 찾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어쨌든, 이 포럼을 기획한 이유는 분명했다. 북향민들도 정치적 지향이 다양하고 민주시민으로써 주체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을 공개적으로 해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여러 질문이 오갔다. 북한인권, 살인혐의 탈북어부 북송, 대북전단 살포 등 대북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을 공유했다. 우리는 같으면서도 다른 정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왜 정치를 선택했는지, 각자 자신이 걸어온 삶과 정치에 대해, 첨예한 정치 이슈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까지 나누면서 충분히 타협점도 찾을 수 있었다. '북한출신' 정체성을 공유하는 북향민들에게 정치적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 여정의 어려움과 한계, 그럼에도 꿋꿋이 나아가고자 하는 정치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 포럼은 ‘북향민의 슬기로운 정치생활’을 주제로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북향민들의 이야기였다. 박예영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과 내가 패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보진영에서 북향민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정치생활이란게 특별히 정치권에서 활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조금 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우리의 일상이 정치적 삶이라고. 북향민들의 슬기로운 정치생활이란 한국 사회의 포용성을 요구하는 말이다. 박예영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도 이런 이유로 나와 겹치는 경험을 오랫동안 해왔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만 북향민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SNS나 공개장소에서 특정 진영의 정책방향과 비슷한 발언을 하거나 지지하면 정체성의 공격을 받게 된다. “빨갱이,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 등의 공격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이거나 진보적인 북향민의 목소리는 쉽게 ‘종북정당’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게 된다. 한국 사회 주류, 특히 보수 기득권층에서 북향민들에게 기대하는 “자유 대한민국 만세”라는 감사 표시와 “인권 탄압하는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증언대에서의 동조가 아닌 이야기는 검증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정부 정책 비판이나 계엄선포 비판 목소리는 북향민들에게는 기꺼이 피해를 각오해야만 가능한 권리다.


북향민이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북에서 온 사람들의 경우 일상에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치성향 감별 센서가 더 자주 발생하고 이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준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북향민들에게 정체성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다. 정착기간과 상관없다. 북에서 14년 살았고 남에서 21년째 살고 있는 나는 진보정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대학생시절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래 18년째 빨갱이 소리를 듣고 있다. 이제는 이런 비난에 익숙해졌다. 이런 문제는 결국 북향민들의 목소리를 평가절하 하고 왜곡하는 것임에 다름없다. 북향민주시민포럼은 이런 고민으로 시작했다. 경계인들의 목소리가 터부시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깨뜨리려고.


세 번째 포럼은 쿠바 혁명 속 숨겨진 한인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를 만든 전후석 감독과 내가 패널로 진행했다. 주제는 ‘경계인들의 이중정체성과 평화적 공존’이었다. 전후석 감독은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로 그가 살아온 삶과 이야기를 통해 북향민들의 경계인적 정체성과 정치적 주체성, 시민적 주체성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더 넓은 세계사적 흐름과 연결해 보고자 했다.


나는 통일이라는 국가적, 민족사적 과제가 남북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이 둘의 합의로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이건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의 삶이 ‘먼저 온 통일’의 삶이 될 수 없다면, 한국 사회 기저에 배태된 심리적 차별과 편견, 그리고 이중적 시선이 이들의 삶을 어렵게 한다면 통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경계인’으로, ‘이방인’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북향민들의 경계인적 정체성을 억지로 ‘한국사람’ 만들기에 밀어 넣기보다는 차라리 더 넓은 디아스포라적 사유 안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찾는 것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나는 전후석 감독의 디아스포라적 사유와 북향민의 경계인적 사유를 연결해 보고 싶었다. 경계인들의 연대로 지리적 통일을 넘어 열방에 흩어진 코리언들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북향민'이라는 집단적 경계인의 경험을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여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제한적 정체성이 아니라 전 세계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북향민은 북향민으로, 조선족은 조선족으로, 고려인은 고려인으로, 재일조선인은 재일조선인으로, 한인은 한인으로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연결하여 경계를 뛰어넘는 사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후석 감독과 함께한 이번의 시도는 더욱 특별했다. 전후석 감독의 '한국인'에서 '디아스포라'로, 다시 '세계시민'으로 존재론적 사유가 확장되는 경험과 나의 '북향민'이라는 현재의 정체성이 왜 디아스포라적 사유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성격이 다른 두 존재론적 사유에는 연결점이 있었다. 나는 일단 가능성을 보고 시작했다.


피스아고라는 ‘북향민’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모든 경계인들과 연대한다. 한국사회, 조선족, 고려인, 한인, 다문화 등 경계에 머물지 않고 기꺼이 경계를 넘어서 대화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피스아고라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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