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세계가 닫힌 세계를 이길 수밖에 없다
최근 해묵은, 그러나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논쟁의 불씨가 다시 지펴졌다. 발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를 듣고 던진 질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뭔가. 공개하면 오히려 북한 실상을 정확히 이해해서 저러면 안 되겠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한 마디는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한 수문장에 가로막혀 있던 금기의 영역, 즉 북한 언론 및 방송 개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야당에 일각에서는 "굴종은 평화가 아니다"라며 헌법 정신 위배를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문해보자. 과연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차단하는 것이 진짜 안보인가? 오히려 그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 결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우리도 북한처럼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
열린 세계가 닫힌 세계를 이길 수밖에 없다. 지난한 체제대결 역사의 승자는 모두 열린 세계였다. 이제 우리는 막연한 공포와 금기에서 벗어나 북한이라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시점에 도달했다. 시쳇말로 "쫄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북한 인민들도 당과 수령의 이야기를 이제는 듣는 척만 하고 신뢰하지 않는 마당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노동신문을 본다고 세뇌 당하겠는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북한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알기나 하는가? 일반 국민들이 북한의 변화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을 탈출한 북향민들의 증언들뿐이다. 현재로선 북한학 연구자가 되거나, 아니면 최근에 북한을 탈출한 북향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여 듣는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발간된 책을 읽거나 소장하는 것, 혹은 북한 웹사이트 접속 모두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보는 것은 불법이며, 더 정확하게는 기존 언론에 공개된 북한 방송자료들 외에 직접 노력해서 찾아보는 행위는 불법이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북한 웹사이트에 자유롭게 접속이 가능해서 종종 북한 연구자들이나 북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국내에서 아이피(IP)를 우회하는 프로그램(VPN)을 통해 접속하기도 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라도 북한 내부 발행 자료를 공식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통일부의 허락을 받아 국회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 등을 통해 로동신문과 일부 북한방송들을 '연구용 목적'으로 보는 것이 전부다. 이것도 제한적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전파일복사는 불가하고 인쇄만 가능하다. 결국 소수만이 제한적 정보에 접근 가능하며 다수는 북한에 대해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매일 아침 쏟아지는 북한 소식들은 전부 기자들이 노동신문을 보고나서 쓰는 기사들이다. 불법이지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규제는 북한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북한이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다고 하나 우리 또한 정보접근 통로를 꽉 닫은 셈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국민이 북한을 직접 알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금지된 성역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수문장이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사람들이 북한에 관심 있어도 북한의 원문을 직접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북한 당국은 남한 영화나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 유통을 단속하고 처벌한다. 한국도 북한의에서 생산되는 콘텐츠 접속과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현실 볼 때, 남이나 북이나 서로 정보의 통제의 측면에선 본질적으로 국민들의 알궐리, 인민들의 알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방송통신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체제 선전 방송으로 우리 국민들을 세뇌시킬 것이라 주장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를 두고 "무장해제하고 북한에 백기투항하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표현처럼,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발상이자 시대착오적 걱정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정도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 방송을 개방해서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선전물 영상을 만들어 내보낸다고 치자. 과연 누가 그걸 보고 세뇌되어 북한을 동경하고 찬양할까? 그토록 유치하고 재미없는 북한 방송에 국민들이 과연 흔들릴까? 아마 보지도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등 각종 OTT 서비스에서 재미있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누가 북한 방송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보겠나. 나조차도 촌스럽다 비웃는 마당인데. 한국 사람들의 지성 수준은 높다. 북한의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보면서 토론해도 될 만큼 말이다.
북한 방송을 개방하면 오히려 북한의 고민이 커질 수도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남한 국민들의 관심을 얻을까?" 북한 당국과 방송 제작자들은 이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북한의 낙후한 방송 제작 기술과 문화적 감정 코드가 다른 콘텐츠로는 남한 국민들의 관심을 얻을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하고,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방송제작 수준을 끌어올려 성과를 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의 방송 제작 기술과 콘텐츠 수준이 한국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상향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자기들만 보고 자기들만 즐기는 우물 안의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사람들과 세계시민들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북한 내 방송 제작 기술과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면 글로벌한 기준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시장 경쟁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가 어느새 그들도 조금이나마 어떤 방식이 됐든 시장을 개방할 가능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 중에 가장 큰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공포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북한에 공포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핵무기를 가졌고, 미사일을 쏘아대서 만은 아닐 것이다. 주체사상 이데올로기가 강력해서도 아닐 것이다. 북한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포가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알면 우리는 거기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니 사실 특별 한 게 없음에도 공포만 커지는 것이다. 체제대결과 이념전쟁은 이미 끝났다.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낸 것도 바로 체제대결 포기의 다른 말이다. 각자 알아서 살자는 얘기다.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바로 우리뿐이다. 북한을 더 이상 미지의 세계로 남겨둘 필요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든 개입해서 북한이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가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