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을 직역하면 화성인이다. 이 소설도 제목 그대로 화성인의 이야기다. 다만 이 화성인이 ET같은 대두 외계인이나 붉은 피부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점이 예상과 다른 지점이다. 이 책에서의 마션, 화성인은 사고로 인해 화성에서 2년간 살아가야 하는 우주비행사 와트니를 뜻한다. 나사에서 아레스3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화성 우주탐사에 참가했던 와트니는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서 혼자 정신을 차린다. 그러니까 일어나 보니 이런 상황이라는 것.
1.모래폭풍을 만난 동료들은 사고를 당해 생명인식장치가 꺼져버린 와트니가 죽은 줄 알고 떠났다.
2.통신기계가 망가져 지구와의 통신은 두절되었다.
3.4년 후에 아레스4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우주비행사들이 화성에 오기는 한다.
4.남은 식량은 400일치이며, 아레스4 프로젝트의 낙하지점은 현재 위치에서 6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화성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 중 거의 최악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Fucked up'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은 이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박사 학위가 두 개나 있는 엘리트 우주비행사지만, 시스템 밖에서는 그 역시 한낱 무력한 인간인 뿐인 것일까? 물론 와트니 대신 내가 갔다면 마션이라는 소설은 감사의 말과 후기 등을 포함해 15페이지 내외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와 달리 와트니는 이과다. 그것도 식물학자 겸 엔지니어. 그는 산소와 수소로 물을 만드는 법과 로버를 고치는 법, 그리고 화성에서 감자를 기르는 법을 알고 있다.
‘마션’은 의도와 상관없이 '문과는 특히 우주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문장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소설이다. 우주에서 조난당한 사람도 이과, 나사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도 이과, 도와주는 중국인도 이과, 도우러 다시 돌아가는 동료들도 이과다. 이 책에서 이과가 아닌 생물은 화성인이 기르는 감자밖에 없다. 그마저도 감자는 귀중한 칼로리원이 되지만 문과는 그렇지도 못한다. 즉 문과는 화성에 가면 감자만도 못한 상황이 된다는 의미다. 나는 이런 문과 멸시에 눈물이 났지만 내가 와트니처럼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니 정말 감자만도 못했기 때문에 부끄러워 아무런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감자를 제외한 모든 생물이 이과라는 점을 강조하듯, 마션은 읽다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정교한 과학적 고증을 앞세운 소설이다. 기압과 박테리아, 궤도와 모스 부호, 로켓 추진 시스템 등 최첨단 물리학과 공학, 식물학이 정말 훌륭하게 고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이런 첨단 과학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결국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다. 불꽃을 이용해 산소와 수소를 결합해 물로 만들고, 박테리아를 증식시키고, 각종 밤새 계산과 공학적 작업을 해 가며 와트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는 것은 결국 감자에 싹을 틔우는 일이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바둑을 잘 두는 알파고라도 망치를 맞으면 고철덩이가 되듯, 지구 최고 과학 천재 집단(나사)의 실시간 지원을 받는, 최첨단 도구로 무장한 인간이라도 흔하디 흔한 감자에서 싹 하나를 틔워내지 못하면 꼼짝없이 굶어죽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인간의 무력함은 지구의 소중함을 절감케 한다. 마션이 뒷받침하는 두 번째 문장은 '집 나가면 고생이다.’다. 아무래도 공기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화성보다는 우주정거장이 안전하고, 우주 정거장보다는 지구가 안전한 법이다. 논의를 계속하자면 지구보다는 한국이, 한국보다는 우리 동네가, 우리 동네보다는 우리 집 침대 안이 가장 소중하고 또한 안전한 공간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집 밖으로 함부로 나갈 경우 와트니 꼴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화성에 가서 조난당한 뒤 아주 낮은 확률을 뚫고 살아돌아오면 집구석에서는 겪을 수 없는 보석같은 경험을 쌓는 동시에 전세계구급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학종으로 따지면 수능 0점 맞아도 서울대는 가볍게 패스할만한 자소서인 셈이다. 반면 집구석에서 이불을 덮고 치킨을 뜯으면 전세계급 스타는 못 되지만 꽤나 배부르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둘 중에 무엇이 좋을지는 개인의 판단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화성과 집구석 사이,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결정된다.
아무튼 화성에서의 고난을 뚫고 와트니는 2년만에 구조된다. 화성에서 2년이라니. 문득 전역자들을 대상으로 군대 2년과 화성 2년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긴 시간동안 인류와 떨어져 고립된 그가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낙천적인 성격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 일조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션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디스토피아나 세계 멸망급 사건을 다루는 음울하고 암울하고 sf들 사이에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션은 꽤 재미있는 동시에 여러 가지 잡다한 과학 지식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유익한 sf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나니 영화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여러분도 소설을 보면 영화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종종 인간사에 휩쓸려 내가 지닌 고난의 짐이 가장 큰 것 같이 느껴질 때, 마션을 한번 읽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