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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천협회 윤범사 Feb 25. 2022

야마오카 소하치와의 인터뷰

대망, 도쿠가와 이에야스

2000년 벽두에 군생활을 시작한 나는 비교적 운이 좋아 부대 내에서 다량의 책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었다. 당시 고참의 권유로 읽기 시작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제목의 소설은 처음부터 20권이라는 권수로 나를 압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큰 줄기로 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소설을 호흡하기란 좀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다발처럼 엮이는 고유한 인간상에 매료되어 어느덧 스무 권째 책을 손에 쥘 무렵, 대망의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 된 나는 사회에서 이에 관련된 하나의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정말 우연히 접하게 된 그것은 모 잡지에 실린 인터뷰였으며 제목은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 씨와의 인터뷰'였다. 지금은 폐간되었다고 하는 일본 홋카이도 신문사의 영문판 잡지였던 탓에 인쇄 상태며 일부의 낙장, 거친 영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으나 내용이 그리 길지 않던 까닭으로 비교적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번역할 수가 있었다. 아쉬운 것은 글의 내용상에 인터뷰어에 대한 신상을 짐작할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정확히 몇 년도에 어디에서 인터뷰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원문의 의도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으나 얼마나 뜻에 맞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주시기를 바라며 인터뷰 내용 중간에 본인의 간단한 주석과 의견을 싣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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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전화를 드리고 선생이 거주하시는 마을을 방문하여 인근 다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미 나이가 지긋하시어 거동이 불편하신듯해, 문을 밀치고 들어오실 때는 잠깐 굉장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선생의 목소리라든가 작품에 대한 열정만은 불처럼 뜨겁고 정열적이어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가 있었다.


선생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홋카이도 신문 연재와 이후 새로이 출간된 문고판으로 2회에 걸쳐 일독한 독자입니다. 어려운 자리 마련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오늘 좋은 말씀 남겨주시면 매우 영광이겠습니다.


(웃으시며) 만만찮은 분량이었을 텐데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고맙군 그래. 무엇을 인터뷰하고 싶은가?


제가 처음 선생의 소설을 접했을 때 느꼈던 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관통하는 일본인 고유의 기질이랄까, 우선 이에야스의 출생 과정 중 어머니 오다이에게서 나타나는 냉철한 '기획' 말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한 모험이랄 수도 있는데요, 태어날 아이(이에야스)에게 호랑이의 신성이 깃들었음을 가신들이 믿도록 하려고 불상을 훔쳐내는 에피소드가 있잖습니까. 절도행위가 오다이의 시녀를 통한 것이었으니만치 노출된 정도만 보면 비밀이 새어나갔을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오카사키 성주 히로다다의 2세에게 가문의 존망이 달렸다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다이로서는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감행한 것이 되는데요.


자네 말대로 이에야스의 출생 과정에서 오다이의 행동은 실로 여장부다운 것이었지. 그건 다 충성심이 남달랐던 오카사키 가신들을 새로이 감화시키고자 했던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겠나. 법당에 보살불상을 도난당한 것으로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이후 작은 주인의 탄생과정에 영험한 기운을 증빙한다는 소문이 되었고 신성(神性)으로 윤색되었으리라 생각하네. 이에야스의 일생에 나타나는 신불사상 있잖은가. 인간의 기원(祈願)에 대해 신불이 영묘하게 감응한다는 믿음 말일세. 작품에서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자리한 것은 이러한 신불사상 같은 걸세. 이루려 노력하되 의도를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인물과 상황 등의 정황 요소들을 종합하여 판단하고 결행했지. 이런 태도들은 이후 많은 인물들에게서도 자주 보였을 거네. 그렇지 않았는가?


비단 이에야스의 출생에서뿐만이 아니라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의 대인화술을 보면 요즘을 사는 우리로서는 아주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현대를 사는 일본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명확한 의도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부나가의 날카롭게 찌르는 기질과 반어(反語), 히데요시의 감각적인 응수와 본래 의도를 정확히 꿰뚫는 안목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서로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입니다.


노부나가 공의 기질은 유명했지. 노부나가 공이 어릴 적 나미타로의 처소에서 노부모도를 혼쭐나게 했던 일화가 기억나는가? 그는 자신의 신분이 나미타로의 객에게 압도될만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던 거네. 장소가 나미타로의 구마저택이었기 때문에 무장을 한 장수라도 쉽게 칼을 뽑을 수 없다는 상황이라든가 노부나가 공 자신과 상대의 나이 차이 같은 종합적인 상황 판단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었네. 결국 상대의 뒤끝이 달아오르는 한계를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랄까. (웃음) 이후로도 노부나가 공은 항상 그런 식이었지. 그러나 그것이 단지 상대의 격한 감정을 불러오는데 그쳤다기보다 이후의 결과를 의도대로 이끌어내기 위한 노부나가 공의 방식이었다면 이해하겠나. '벌처럼 상대의 허를 쏘고 나비처럼 유유히 난다.' 덴가쿠 골짜기에서 이마가와 요시모도 공을 쓰러뜨린 것도 그런 노부나가 공의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보네. 하시바 시절의 히데요시는 그런 노부나가 공과는 둘도 없는 짝이었달까, 알잖은가. 이마가와 씨에 대항해 농성을 준비한다 하여 무방비로 낮잠을 청했을 때도 주방장 신분이었던 히데요시만은 마을 집집마다 된장을 모으러 다니며 노부나가 공의 진의를 받들지 않았던가. 모두들 주군의 농성 소식에 당황하고 있던 사이 히데요시의 재치 있는 감각이 없었던들 그야말로 허를 찌른 기습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노부나가 공도 히데요시도 서로를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 걸세.


작품을 전개하시면서 선생은 인물의 캐릭터와 연계된 행간의 의미까지도 독자로 하여금 파악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생께서 앞서 예로 드신 노부나가 공처럼 말입니다. 헌데 작품을 끝까지 읽은 저로서도 아직 이에야스의 진의가 파악되지 않는 전투가 있습니다. 바로 미카다가하라 전투인데요. 30대의 젊은 나이에 당시 전국(戰國)을 종횡할만한 세력이었던 다케다 신겐을 상대로 무리한 대결을 벌인 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가신들 중에도 회의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에야스를 믿은 사쿠자에몬 같은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자멸할 것을 두려워한 가신들도 있었죠. 저도 쭈욱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어오면서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이에야스에게 숨겨둔 비책이든가 어떤 의도가 있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독자인 저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에야스에게 배신감을 맛본 경우인데요. 그럼에도 전투 이후 귀성하는 말 위에서 지린 똥을 된장이라고 우기는 데는 정말이지 이에야스의 자신에 찬 모습에 기가 질려버렸습니다.


미카다가하라 전투에 대해서는 내가 이에야스 공을 대신하여 사과를 하지. (웃음) 이에야스에게 목숨을 맡긴 가신들에게는 매우 안된 이야기네만 당시 30대로서의 이야에스가 고민하던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자질이 과연 신불께서 전국(戰國)의 일본을 맡길만하냐 하는 것이었네. 이후 이에야스 스스로 나이를 더 먹고 더욱 명민해지면서 자신도 미카다가하라 전투를 젊은 날의 치기로 반성하는 대목이 나오네만. 미카와 가신들의 전폭적인 믿음과 이에야스 자신 한 영지의 통치자로서 신불께서 맡기신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거네. 수적으로나 세력으로나 당시 이에야스의 영지를 통과하려던 다케다 신겐은 이에야스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짓밟을만한 힘이 있었지. 매우 모험적이었지만 이에야스는 생각한 거네. 정녕 자신이 신불의 감응을 얻어 혼란한 전국을 통일하고 평화의 초석을 놓을 인물이라면 다케다 신겐 정도의 외풍에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일세. 그래, 무력으로야 당해내지 못함을 알면서도 자존심으로 맞섰지. 그래서 전투 배치도 학이 날개를 펴듯이 늘여놓지 않았던가. 이에야스 세력이 가까스로 살아남은 듯 싶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를 않네. 그것은 전장에서 보여준 가신들의 하나 된 믿음과 전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여준 기지와 재치에 이에야스의 멈추지 않은 끈기며 평정심이 결합한 결과라고 보네. 평화를 희구하는 커다란 원칙 아래서 라야 나올 수 있는 상황 수습의 능력이랄까. 실제로 이에야스 자신 미카다가하라 전투 이후 빠르게 회복하여 크게 성장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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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여준 기지와 재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잠깐 이야기하려 한다. 미카다가하라 전투에서 세력이 쑥대밭으로 된 이에야스는 자신의 근거지인 하마마츠로 입성하면서 추격해오는 다케다 군에 대비해 한 묘책을 낸다. 사실 묘책이랄 것도 없이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한 모험이랄 수도 있는데, 성채 요소요소마다 잘 보이도록 화톳불을 질러놓고 성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추격군에 대비하여 허장성세를 벌인 셈인데 실제로 이에 힘입어 다케다 군과의 추가적인 전투 없이 미카다가하라 전투는 마무리된다.


'전장에서 보여준 가신들의 하나 된 믿음과 전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여준 기지와 재치에 이에야스의 멈추지 않은 끈기며 평정심이 결합한 결과라고 보네. 평화를 희구하는 커다란 원칙 아래서 라야 나올 수 있는 상황 수습의 능력이랄까.'


번역 도중 위와 같은 인터뷰 대목에 이르러 2002년 대한민국의 대선이 떠올랐다. 국민경선과 후보 단일화라는 큰 모험을 통해 노무현 당선자가 최종 후보로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었지만 잘못되었을 경우 현 집권 정당인 민주당에서 대선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당선자 역시 '노사모'라는 국민적인 사랑에 당선자 자신의 끈기와 확신이 결합된 결과가 아니었을지. 그래서 2002년 대한민국 대선은 '젊고 깨끗한 정치'라는 커다란 원칙의 효과가 발휘된 결과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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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된 언어와 그 의도에 대해 더 여쭙겠습니다. 히데요시 사후 유일한 친자식이었던 히데요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과정에서 이에야스는 끊임없는 애정을 생모 요도기미에게 전달하여 적의가 없음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정치적인 갈등이 증폭되어 마침내 히데요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이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이에야스 측의 고도로 섬세한 속임수가 아니었겠느냐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전국의 패자로 성장하는 가운데 흔하게 보이는 가신들과 이에야스의 관계를 참작해도 그렇습니다. 단적인 예로 혼다 사쿠자에몬이라든가 이시카와 가즈마사의 경우 이에야스의 의도를 평화에의 희구라는 대원칙 아래서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작은 물의를 빚기도 하였습니다. 이에야스와의 화평을 목적으로 보내진 히데요시의 어머니 오만도코로를 사방 장작더미에 가두어둔 일이 하나요, 히데요시의 진중으로 주인을 바꾼 가즈마사로 인해 가즈마사 자신 사쿠자에몬을 위시한 일부 가신들에게 분노를 산 일이 또 하나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이에야스가 진정으로 가신들을 이해하지 못하여 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듯 가신들의 기질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을 터인 이에야스가 히데요리의 정황을 읽지 못하여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그간의 이에야스로 미루어 볼 때 이해하기 힘듭니다. 혹시 이에야스의 진심은 역시 히데요리의 죽음이 아니었을런지요. 이에야스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히데요리의 죽음을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에야스 공은 신이 아니었네. (이 부분에서 선생의 표정이 굳어지셨다. 히데요리의 죽음을 사고로 보심이 이유라 생각된다.) 이에야스 공으로서는 요도기미 측에게 충분한 기일 동안 진심으로 믿음과 사랑을 보이셨잖은가. 정치적인 노력으로는 자신의 진의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판단한 요도기미 측의 가다기리 가츠모도를 통해 계속적인 질책과 가르침을 보이셨고 말일세. 이에야스 공으로서는 히데요리와 요도기미로 하여금 자신을 믿을만한 정황 조건을 모두 설정하고서 기다린 것이지. 자네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 보기에 이에야스 공은 상대를 물건 집어오듯 저쪽에서 이쪽으로 갖다 놓을 수는 없다고 믿으셨을 걸세. 그렇다면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조치란 스스로 깨우칠 만큼 성의를 보이고 노력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실제로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리를 위해 황실과의 관계에서도 삼가고 수차례 직접 오사카 성을 오가며 보이신 노력은 매우 지극한 것이었네. 문제가 된 것은 히데요리를 정치적인 걸림돌이라 여겼던 이에야스의 가신들이나 스스로 위기감에 사로잡힌 요도기미 측이 아니야. 민중의 떠도는 목소리, 천지를 울리는 역사 흐름의 소리였다고 할까. 히데요리가 진정 이에야스를 원망하여 자결을 한 것이 아니야. 모두가 믿게끔 되어버린 시대의 요구 탓이지. 히데요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 자결을 택한 것일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시카와 가즈마사가 히데요시에게로 주인을 바꾼 것은 이에야스도 은연중 허락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그토록 열을 올리며 가즈마사를 비난한 사쿠자에몬도 마음속으로나마 가즈마사를 이해하고 있다고 선생은 서술하셨습니다.


'평화에의 희구'라는 절대 원칙이 있었잖은가.


듣고 싶은 말씀이 참 많습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이후 수백 년간 일본의 발전을 기초한 이에야스 공 말입니다. 유년시절을 신경질적인 어머니 아래서 보낸 히데요리나 기질이 강한 노부나가, 감각적인 정치력의 히데요시 등과 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려서부터 많은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서는 스스로 배움을 실천하였지요. 어머니 오다이를 비롯하여 '미카와의 고아'로 놀림받던 이마가와 댁에서의 셋사이 도사, 검법 스승이었던 오쿠야마 덴신을 비롯 인생 말년의 야규 무네노리 등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승들과 가르침을 주고받았습니다. 이에야스에게서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특유의 조심성, 신중함이 엿보이면서도 때때로 조급한 성정을 억누르려 손톱을 깨문다든가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보이는데요. 오늘을 사는 독자로서 이에야스의 위업이야말로 천재성이 아닌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야스 공이야말로 끊임없이 수학하셨던 분이지. 말년에는 후손들이나 가신들로부터 '신불의 사려'라는 평까지 들으실 정도로 말일세. 범인들이 범접치 못할 사고를 하셨다 할까. 평화 희구의 원칙 아래 스스로 필요하다 싶으신 것들을 배움 하신 거야. 전국 패장으로서의 지식, 평화시대에 통치자의 원리인 유교이념과 교육방침, 부국을 이룩하기 위해 중요했던 교역, 물산(物産)의 장려 등등은 끊임없이 배움 하신 가운데 이뤄낸 결실이네. 쉴 줄을 모른 채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욕심이 강했다고 할까. 오고쇼로 등극한 이후에도 히데다다 장군에 앞서 실질적인 최종 결재권자로서 역할하셨지 않은가. 이에 비한다면 히데요시의 풍류적인 경향, 호전적인 정치력은 제한된 시데 영웅의 면모라 하겠지. 노부나가 역시 가신에 대한 지나친 성격 때문에 ('대머리 미츠히데'를 염두에 두신 듯했다.)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자네 이야기대로 이에야스 공이야 오다이 같은 훌륭한 어머니를 비롯하여 셋사이 도사, 야규 무네노리 등의 스승들에게서 꾸준히 배움을 얻었고, 친구이자 가신이었던 숱한 자들로부터 꾸중과 가르침과 깨달음을 건질 수 있었던 열린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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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은 여기서 끝난다. 소설의 규모로 보아 중간중간의 숱한 이야기와 이에야스 사후 2대 장군 히데다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더 있을 법한데 온전한 형태의 원본을 두지 못한 역자로서 아쉬울 따름이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어본 독자들이나 일본사를 공부하는 여러분들의 따끔한 질책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무나나라 002, 2003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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