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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Jul 06. 2019

돈은 없지만 좋은 집엔 살고 싶어

사소하고 잔혹한 욕망에 대하여

전셋집을 구했다. 결혼하고 8년 만에 첫 이사다. 그동안 월세를 내고 살았는데, 비슷한 금액이라도 남 주는 것보다는 은행 주는 게 배가 덜 아플 것 같아서(...) 이사를 결심했다. 물론 농담이다. 그러나 꼭 농담만은 아니다. 남편과 매 주말 집을 보러 다니면서 과연 인류는 왜 존속되는가 다시 한번 회의가 폭발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이 필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집 자체가 불로의 근거가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집 자체가 야근의 목적이 된다.
 
이렇게 말은 해도 사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으므로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새로 들어갈 집은 (이전 집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있고, 물이 샌 흔적도 없고, 거실과 주방과 방과 화장실과 세탁실이 있다. 집은 본래 지상에 있는 것이 맞고, 물이 새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분리된 공간이 있으면 편리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층만 더 높았으면 했다. 맞바람이 치는 구조였으면 했다. 붙박이장이 있었으면 했고, 베란다가 있었으면 했다. 이런 나의 욕망과, 대리석 바닥과 정원과 수영장 같은 것을 바라는 욕망의 층위는 정말로 다른가.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햇빛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냉장고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간을 찌푸리는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말든지 짜증을 내지 말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할 것이다.
 
기생충은 못 봤다. 특별히 구미가 당기지도 않았지만, 내 집 마련도 아니고 전셋집 하나 구하러 다니면서 온갖 짜증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는 타입에게 적절한 영화는 아닐 것 같았다. 냄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만 알고 있다. 헤아려보니, 이번에 집을 계약하기까지 총 열세 군데의 가정집에 방문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그 집이 켜켜이 쌓아온 냄새가 난다. 아니 사실 들어가기도 전에 난다. 해당 거주지의 연식, 배수와 통풍의 상태, 사고(事故)의 경험, 구성원들의 식습관 등이 ‘명징하게 직조된’ 결과로서의 냄새가, 공동출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을 휘감는다. 그러므로 나는 냉장고 놓을 자리뿐만 아니라, 이곳의 거주자가 됨으로써 더 이상 나는 맡지 못하게 될 냄새를 측량하게 된다. 좋은 냄새든, 나쁜 냄새든.
 


‘어떤’ 종류의 냄새를 피해 나오면서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그 대척점의 자조에 시달렸다. 남편과 내가 딱 한 뼘 더 기다란 햇살, 고작 한 뼘 더 넓은 창, 기껏 한 뼘 더 떨어진 옆집과의 거리, 그래봐야 한 뼘 더 높은 신발장을 찾는다고 발발거리는 모습은, 저 높고 드넓은 곳에 사시는 ‘어떤’ 종류의 분들에게는 진정 어리둥절한 일일 것이다. 아까 그 집과 지금 이 집의 차이를 그분들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개업자들의 레퍼토리인 “더 다녀보셔도 이 집만 한 게 없어요”는 어쩌면 희한한 맥락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나중에 나는 그 말이 “어차피 죽으면 다 똑같이 썩는 냄새나요”로 들리는 정신승리를 경험했다.
 
새로 들어갈 집이 결정됐으니 당분간은 자괴도 자조도 줄어들 것이다. 남 사는 걸 보지 않고 나 사는 걸 보이지 않으면서, 나는 소소하게 집을 꾸미고 동네를 어슬렁거릴 것이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거나 책장을 대폭 줄여야 한다거나 길가에서 담배냄새가 올라온다거나 하는 슬픔은, 생각보다 외풍이 없다거나 위층 식구들이 과묵하다거나 화장실 수압이 장대하다거나 하는 기쁨으로 상쇄하면서. 그리고 어느 정도 집이 정리되고 맛집 서너 군데와 단골 카페 한 군데를 뚫을 즈음이면 남편과 거실에 드러누워 기생충을 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행복하고 비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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