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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Jan 13. 2020

부부에게는 카페가 필요하다

아이가 없다면 더욱

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과 카페에 들렀다. 늘 지나치기만 하다 처음 들어간 곳이었다. 후미진 골목에 있어선지 조도가 매우 높게 느껴지고, 점주의 운영 목적이 의심될 만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우리는, 커피를 자리끼로도 마실 수 있는 자와 아침에도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자로 구성된 커플.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며, 내 몫에 들어갈 샷 하나를 남편 몫에 넣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거리에 늘어선 카페들을 보고 있으면, 커피 못 마셔서 죽은 귀신이 들러붙은 민족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습관처럼 생각은 하지만, 연교차가 극심하고 공기의 질이 나쁜 도시의 생활자에게 카페만큼 소중한 공간도 드물다. 오늘 같은 경우, 다 마시지 않을 (카페인) 커피를 굳이 주문해도 아깝지 않은 것은 애당초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충전해둔 금액이 약간 남아 있었고, 다른 때보다 빠듯하게 살림을 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주말을 오롯이 함께 보내는 한겨울의 부부에게 그런 공간은 몹시 소중하다. 집이 아니면서도 너무 낯설진 않고, 너무 낯설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집이 아닌 공간.


특히, 함께 살기 시작한 후 사계절이 여덟 번 넘게 바뀌는 걸 나란히, 아이 없이 지켜본 부부라면 더욱. 자식을 키우지 않는 부부란 어쩐지 보이지 않는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또래의 기혼자들은 대개, 아주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자녀를 키우는 중이므로 인생에서 거의, 다시 선택하기 어려운 수준의 빡빡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쪽은 오히려 싱글인 친구들이지만, 이번엔 오히려 그들 쪽에서, '제도적으로' 묶여 함께 살고 있는 커플의 삶에는 무언가 견고한 담장이 있을 거라 추측하곤 한다.

하지만 막 결혼해서 그간의 로망을 실현하기에 조급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부의 결속을 보전해주는 삶의 실체랄까 가치랄까, 그런 것들이 어디서 절로 굴러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출산과 육아는 (가까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도저히 수식하기 어려운 수준의 압도적인 크기로 그 실체/가치로서 기능한다. 그러므로 그 압도적인 과제를 선택지에서 빼버렸다면, 그러나 같은 집에서 그저 서로 왔다갔다 하는 룸메이트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부부에게는 카페가 필요하다.


물론 작정하고 궁리하면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여행, 문화생활, 취미활동 등등.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일상'이 되려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거나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이에 비해 카페는 가성비가 좋고, 특별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바로 오늘처럼, 춥고 먼지 많은 주말의 어느 떠도는 시간-육아 중인 커플에게는 그토록 간절하다는-에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대화를 나눈다. 이 모든 것은 집에서 해도 되는 일이지만, 집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집은 때때로, 그곳이 얼마나 안락하든지 간에 일정한 강박과, 공유하는 이가 있을 경우 지속적인 감각의 긴장을 요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명백히 존재하지 않는 소파에 앉아, 분명히 카누가 아닌 커피를 마시며, 남편에게 며칠간 내가 모은 짤들을 보여주며 웃고 있는데 남편이 문득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저쪽 쳐다보지 말고 들어. 통로 바닥에 만 원짜리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어."


"뭐 진짜? 어디?"
"저기 저쪽 통로에. 지금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떨어뜨린 건 아니야."
"그냥 종이 아닐까? 진짜 만 원 맞아?"
"맞는 것 같아. 내가 담배 피우러 나가면서 정확히 볼게."

자리를 떠난 남편에게서 곧장 카톡이 왔다.

만 원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상황이 또 너무 웃긴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입을 가리고 끅끅대는 사이 남편이 돌아오면서 지폐를 주워다 사장님에게 건넨다. "누가 떨어뜨린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부부의 B급 대화. 아, 나랑 상의도 없이 그냥 갖다드리면 어떡하냐고, 뭘 상의하냐고, 만 원이면 지금 둘이 마신 커피에다 한 잔 추가라고, 됐다고, 어차피 주인도 없지 않으냐고, 그래도 가져가면 안 되는 거라고, 아 그러냐고, 그리고 너무 통로 한가운데 있어서 내가 허리 구부리는 거 옆에 사람이 다 봤다고, 아 몰랐다고, 그럼 얼른 집에 가서 신발 밑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자연스럽게 걸어오면 되지 않았냐고, 우리 어차피 아까 산 로또 조금 이따가 당첨될지 모르니까 만 원쯤이야 괜찮다고, 아니라고, 그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사장님한테 말해서 반띵하자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9년 차 부부의 개소리가 토요일 밤을 안온하게 밝혔다. 카페는 쉼이요, 사랑이요, 평화다. 단언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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