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있고, 오늘은 없는... 나의 스타에게...
나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갔다.
2008년, 대학교 2학년 때 이제는 더 이상 오빠라고 부를 수 없는 아이돌이 나타났었다
빛나는 샤이니입니다! 라고 밝게 인사하면서 몸이 부숴져라 춤을 추고 CD를 씹어먹은 것 같은 라이브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아이돌이었다.
대학시절 나는 샤이니를 보러, 특히 메인보컬인 종현이를 보러 친한 언니와 음악캠프를 가곤 했다.
베프와는 한강을 자주 가곤 했었는데, 종현 얘기나 샤이니 얘기를 하곤 했다.
그 땐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 지 자주 웃었었다.
짧았던 미국 유학시절은 내 인생에서 제일 기쁜 날들이기도 했지만, 한편 제일 불행하기도 했던 나날들이기도 했다. 우울을 겪으면서, 창문을 보면 저기에 내 몸이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뛰어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몸이 끼일까. 저 창문에서 뛰려면 그 앞에 있는 TV를 치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불로 몸에 둘둘 감는다면 덜 아플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캠퍼스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상한 한국여자애라고 생각했을 거다. 유학생 친구들도 언니 제발 그러지말아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모든 걸 내 탓이라고 하는 종현이를 보면서, 내 마음이 찢어졌던 것은 그의 유서 하나하나가 너무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상담을 받아왔지만, 미국에 가서도 상담을 받았었다. 상담을 받던 나 역시도 모든 걸 내 탓이라고 했었다. 미국인 상담사에게 It’s because of all my faults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여렸던 나는 모든 것을 항상 내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때는 그랬지만, 세상 살고 보니 별거 없어서 차라리 비치가 되자라고 마음을 먹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들을 보내다가, 샤이니가 셜록이라는 노래로 컴백을 했었다. 미국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와 친한 동생은 학교 내의 음악을 트는 스피커에 아이팟을 연결해 샤이니 노래를 틀었다. 미국인 매니저는 특이한 노래를 그만 틀어라고 해서, 우리는 킥킥거렸었다.
샤이니 셜록 춤을 추기도 하고, 외국 친구들에게 못 하는 영어로 나는 샤이니라는 한국의 가수를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인터넷에서도 빛순이라며 말머리를 달고 샤이니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우울을 극복하고 마음을 다 잡고 나서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었다. 미국일주를 할 때 우리는 호스텔에 묵곤 했었는데, 하루 일정을 준비하는 아침을 샤이니 음악으로 시작했었다. 거리를 다닐 때도 사람이 없을 때엔 샤이니 음악을 핸드폰으로 틀고 춤을 추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곤 했다. 다음 날 일정을 준비할 때에도 음악을 들었고, 자기 전 샤워를 할 때에도 음악을 들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댄스선생님한테도 샤이니 춤을 추자고 조르기도 했었다. 첫 회사를 다녔을 때의 일이다. 두 번째 회사를 다녔을 때에도, 세 번째 회사를 다녔을 때에도 나는 그들의 노래를 좋아했다. 특히 종현의 음악을 좋아했다. 남들이 과하다고 할 지 몰라도 나는 그 감성을 좋아했다.
아이유의 우울시계라는 노래를 종현이 작사, 작곡했다. 원래는 종현이 부르려던 곡이었는데 아이유가 사겠다고 했다나? 그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여러 번의 회사를 옮기고 나서, 작년에는 그의 콘서트를 갔었다. 딱 작년 이 맘 때 쯤이었던 것 같다. 혼자 스탠딩석 3~4번째 줄 정도에 서서 공연을 보았었다. 너무너무 행복했었다. 엄청 공허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는데, 그 2시간의 추억으로 다시 몇 달을 살아갔다.
그리고 올해는 샤이니의 9주년이었다. 팬미팅을 갔었다. 그 때는 지치고 힘들어서, 나이 서른 먹고 혼자 여기에 와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그게 내가 본 마지막 그의 모습이고, 나의 20대 추억을 함께 한 샤이니 5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오늘 그의 빈소에 상주라는 이름으로 나머지 4명 멤버들의 이름이 올랐다. 내가 생각했던 샤이니의 마지막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종현은 나에게 아이돌의 의미라기보다는 반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지 다 잘 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
힘이 들 때면 그와 전혀 상관없는 사무직이든 컨설팅이든 그런 일들을 하면서도, 나도 그처럼 프로의식을 가지자고 마음을 다 잡기도 했다. 내가 어디선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듯이, 그들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미지 관리,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표현하면서 사는 게 최고다. 나도 강사랍시고, 나름대로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명목하에 내 SNS라는 내 공간 하나도 모두 비즈니스로 바꾸면서 살아왔었다.
최근에는 압박감이나 악플, 마감일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심장이 조여오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연예인한테만 있을 줄 알았던 증세가 나한테도 왔다. 활발하던 활동이 다소 뜸해진 까닭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인생과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는 그 누구도 돈을 저승까지 싸들고 가지도 못 한다.
나는 종현에게 위로를 받았는데, 나같이 일반인 하찮은 미물이 그에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긍정적인 댓글 하나 달은 적이 없었다. 그게 너무 마음 아픈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자기 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과 수고했다. 고생했다. 라는 말을 듣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대학교 때부터 약 10년간 샤이니 팬이라는 걸 아는 친구들은 내 걱정을 하며 연락이 왔었다. 회사 선배의 죽음 이후로 겪는 두 번째 죽음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회사 선배님의 마지막을 겪고 나서 나는 삶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었다.
아침에 일어났다. 기분이 울적했다. 왜 울적한 지 모르겠었다. 항상 감정이 먼저 앞선다. 그리고 그 감정의 원인을 쫓아가곤 한다. 오늘 아침 내가 기분이 평소와 달랐던 이유는… 어제는 있고, 오늘은 없는 그 사람 때문일 것이다.
잠시 슬퍼하다가도, 나도 내 삶을 살아가야하는 지라 조금 지나면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애도와 추모가 담긴 글을 적는 것은.
그 동안 표현하지 못 했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정말 수고했고,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리고 내 사람들에게…
우리는 표현에 많이 서툴다. 칭찬에 인색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오글거린다고 생각한다. 내 SNS는 자기 표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느덧 비즈니스와 자기개발의 공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때는 그저 자유로운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보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귀속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를 가지며 살아가고 싶다.
약 10년 동안 샤이니의 팬, 특히 종현군의 팬으로 살면서 참으로 행복했다.
이런 글을 쓰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지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위로해준 그에게, 열심히 살아와 내 자랑이 되었던 그에게
너무 잘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