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불이행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비트코인의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비트코인은 한 집단이나 국가가 쉽게 고쳐쓸 수 없는 견고하고 탈중앙화된 온라인 장부로 보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거래자 위험 (Counterparty risk)
거래자 위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거래자 위험이란 금융 거래에서 상대방이 결제를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어릴 적 슈퍼마켓에서 외상을 달던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거래자 위험을 감수하며 이웃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외상을 허락했습니다.
슈퍼마켓 아주머니에게 있어 거래자 위험은 무엇일까요? 이는 고객이 외상장부에 기록된 두부 한 모나 새우깡 한 봉지의 대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갑자기 이사를 가서 정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들 수 있겠네요.
반대로,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거래자 위험이란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외상장부에 기록된 물품의 수량을 임의로 조정하는 경우입니다.
90년대의 슈퍼마켓에서는 이처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외상을 기록하고 기한 내에 대금을 지불하는 거래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거래자 위험이란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대금 지급 약속 불이행이나 계약 미이행을 뜻합니다. 기업의 경우 파산 그리고 국가의 경우 디폴트 선언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무한 신용의 주체가 아니다
대개 국가는 무한한 신용을 가진다고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 이를 반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그리스 경제 위기,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러한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제 혼란으로 인해 해당 국가들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국가 간 합의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사회는 SWIFT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는 러시아로 하여금 SWIFT라는 견고한 금융 메시징 시스템 내에서도 거래자 위험, 즉 상대방의 약속 불이행 위험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도 예기치 못한 리스크가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비트코인은 채무 불이행의 주체가 없다.
이와 비교했을 때 비트코인은 어떨까요? 비트코인은 국가, 기업, 개인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초국가적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이는 비트코인이 발행 주체 없이 움직이는 점에서 기인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 채굴자들이 노드로 참여해 거래를 검증하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에 비트코인에는 거래자 위험, 즉 거래 상대방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험이 없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보낸 1 비트코인은 거래가 완료되어 장부에 기록되면 무를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 혹은 중국 간의 거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중개자가 필요 없습니다. 은행이나 국가와 같은 전통적 금융 시스템의 개입이 없더라도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비트코인은 거래의 변제 최종성을 보장합니다 [1]. 이는 거래가 한 번 기록되면 변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거래 완료를 제공합니다.
앞으로 국가들은 어떤 담보물을 갖고 거래를 할까?
앞서 예로 든 국가의 디폴트 선언, 러시아 SWIFT 배제 등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국가 간 채무나 계약은 경제 위기와 정치 군사적 이해관계로 인해 불이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채는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 중 가장 신뢰받는 금융 상품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만약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세계적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미국이 이들 국가와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은 과연 이들 국가에 대해 채무를 성실히 이행할까요?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통해, 인류가 금 본위제도와 같은 약속을 항상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음을 배웠습니다.
이때 비트코인을 담보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비트코인 장부는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담지 않습니다. 즉, 인류 사회의 이념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작동합니다. 기존 담보 신용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앞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과 신뢰도는 더욱더 높아질 것입니다.
[1] 오태민, 더 그레이트 비트코인,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