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은 전날에야 겨우 맞춰졌는데, 우리에겐 좌표 하나와 소총, 그리고 행사 날짜와 행사장 위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벽장 속에 있는 안드로이드.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준비해 준 것이다. 그것들을 전부 연결해 보니, 오늘의 그림이 나왔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예측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 모든 퍼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직 남겨진 조각이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연설을 했다. 대국민 연설이었다. 백악관으로 간 탱크를 뺀 나머지 식구는 TV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딥 스테이트의 위협은 이처럼 심각합니다. JFK가 쓰러지던 날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도 다시 한번 쓰러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 나는 이렇게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제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불굴의 의지로 정부를 뒤흔드는 자들, 그리고 우리를 위협하는 무뢰배들을 쓰러뜨릴 것입니다. 신이여, 미국을 축복해 주소서(God bless America).”
페머트 대통령의 머리를 감고 있는 붕대에는 많은 피가 묻어 있었으나, 대통령의 주치의는 대통령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기적처럼 총알이 대통령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총알 한 발이 더 있었으나, 그것 역시 대통령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일단 의사의 설명을 그랬다. 언론은 그의 설명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으나, 백악관의 설명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이 저렇게 건재한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부통령 마이크 챈들러는 대통령 유고를 대비해 서둘러 백악관으로 갔지만, 권한 이행은 없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이미 대통령이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백악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갈색 뿔테 안경을 쓴 중년의 앵커는 정면을 바라보며 진행 멘트를 읊었다.
“정말, 기적이라면 놀라운 기적입니다. 화면으로 봤을 때만 해도 중대한 사태가 난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대통령은 기적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연이 거실의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소파 옆 스툴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클라라에게 말했다.
“클라라. 애들 데리고 가서 재우고, 클라라도 눈 좀 붙여요.”
클라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민수와 마리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린과 료마가 1층 부부의 침실로 들어간 뒤, 하연은 자신의 침실로 갔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서랍장에서 권총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서랍장에 있는 20발 들이 탄창을 권총에 결합한 후, 조정간을 안전에 둔 채 권총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봤다.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 없이 화면만을 보고 있었다. 저녁 8시. 탱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기 전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지만 그녀는 잠들 수 없었다. 탱크가 집에 없으니, 자신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실의 불은 꺼져있었다. TV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이 유일하게 거실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하연은 낮의 ‘쇼핑’으로 조금 피곤했지만, 어차피 잠이 오지 않을 듯했다. 하연은 그대로 소파에 앉아, TV에서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대통령 피습과 현 상황에 대한 기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백악관의 지하 벙커. 그러니까 지하 벙커 도시 속의 또 다른 벙커. 그곳에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E037과 합동참모본부 의장, 경호실장과 비서실장, 그리고 합참차장인 앤드류 고든. 그곳에 챈들러 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가족은 벙커보다 더 아래에 있는 작은 장례식장에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기밀은 유지되고 있지요?”
몸이 비대한 합참의장이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구릿빛 피부에 작은 체구를 가진 라틴계 여성인 아만다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장은 고든 장군을 보고 말했다.
“계획은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국방부 장관에게도 그렇게 보고를 해야 할 테고…….”
고든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뒤에 서 있던 탱크를 돌아보자, 탱크가 앞으로 나오며 그에게 서류철을 하나 건넸다. 고든은 의장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2주 후에 공세가 시작될 겁니다. 9월 1일. 조금 무더운 날씨지만 새벽 시간에 공세를 시작하면 문제없습니다.”
의장은 서류를 살펴본 후 말했다.
“부통령은 절대 모르게 해. 이제부터는 저 자가 우리 대통령이야.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을 테고…….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왔지만…….”
그의 시선 끝에는 상황실 책상 가운데,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E037이 있었다. 의장이 그를 바라봤을 때, E037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의장이 E037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야 그는 의장을 바라보며 ‘꿈’에서 깨어난 표정을 지었다.
“이봐. 정신 차려. 그런 얼빠진 표정으로 국민들 앞에 섰다가는 모든 게 끝이라고. 어서 대통령처럼 해보라고.”
의장이 히죽거리자 E037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그 큰 손으로 의장의 팔을 쳐냈다.
“그런 서류 더미를 내밀 거라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게나.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놔.”
E037의 연기에 의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서서 고든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 작전 담당. 그래, 프랭크 소령. 저 친구한테, 우리 대통령에게 한 번 더 상세하게 브리핑을 하라고 하게. 난 이만 돌아갈 테니, 고든 자네가 잘 마무리해 주게. 그리고 아만다. 빈틈이 없어야 해요. 우린 저 자를 다음 임기까지도 끌고 가야 하니까.”
의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몇 가지를 더 상의한 후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그리고 고든 장군도 방을 나섰다. 탱크는 클론 경호원 두 명과 방에 남았다. 그가 E037의 옆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치자, E037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계획을 다 검토했어요. 마지막으로 하나 묻고 싶어요.”
E037의 말에 탱크는 헛기침을 하며 대통령의 말을 바로잡았다.
“오늘 대통령께서는 평소와 말투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그 말에 E037은 말투를 바꾸어 다시 탱크에게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진정 어머니의 뜻인가?”
“그렇습니다.”
탱크의 단답에 E037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탱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알겠네. 이젠 내가 처리하지. 자넨 그동안의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네. 이젠 그만 돌아가서 자네 가족들을 돌보게. 여기서부터는 내 역할인 것 같으니.”
탱크가 대통령의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대통령님의 행운을 빌겠습니다.”
탱크가 상황실을 떠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악관의 1층으로 향하는 동안, E037은 상황실 밖으로 나와 그곳보다 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루시와 세라, 키온 세 인공지능이 있는 곳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극소수의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성역이다. 지하 20층. 상황실보다 10층 아래에 있고, 대통령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곳보다도 5층 아래에 있는 지하 중의 지하. E037은 지하 워싱턴의 심연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