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걷기 프로젝트’ 참여 윤채와 함께한 22Km(2025.05.02일자)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로서 25년 1월부터 12월까지
사람·이야기·사회·이슈 등을 주제로 정기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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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걸 좋아한다. 바람 불고 선선한 날,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걸 특히 선호한다. 걷다보면 복잡했던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고 기분까지 나아짐을 느낀다. 뛰는 것도 싫진 않다. 각자의 매력이 존재한다고 보면 되겠다.
나와 윤채도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지만 그게 우리 사이를 갈라놓거나 규정짓진 못한다.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30대 청년들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한편으로는 누구 못지 않게 챙겨 주거나 받기도 한다.
윤채가 기부걷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도 햇수로 3년째다. 여름과 가을은 그동안 종종 참여했었는데 봄에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더구나 여느 때와 달리 기부목적이 아닌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우리의 우정을 기념하고 자체 기부걷기 대회를 준비코자 참여한 게 크다.
본 행사가 열린 4월 20일,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 않고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그 여정을 담백하게 담아내고자 한다.
난지한강공원에 모인 많은 워커들.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삼삼오오 모여 잔디밭에서 몸을 푼다. 출발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한 우리 둘. 이윽고 자연스레 무리에 합류하여 함께 몸을 푼다. 날씨도 좋고 휴일이라 가족단위로 놀러온 분들도 상당했다. 언제나 그렇듯 윤채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활동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을 무척 좋아한다.
현장을 떠나있어도 당사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한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느낀 건 “우리도 어울리고 싶다”였다.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보통의 삶을 누릴 기회가 존재한다. 2023년 진행된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의 매일 외출하는 당사자들의 비율이 54.1%로 나타났다. 물론 전체 장애인에 비하여 혼자 외출이 가능한 비율은 낮으나 일상생활이나 사회참여에 어느 정도 적극성을 띄고 있다고 보인다.
여가활동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시설 이용 외 가정에서는 TV시청이나 컴퓨터, 음악감상 등이 전부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당사자들도 있고 위 실태조사가 모두를 대표 한다 보기는 어렵다. 점진적으로 여가나 문화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참여나 활동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윤채와 같이 걸으며 이야기 나눴다.
윤채는 말한다. 경제적인 안정과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우선이지 않을까하고. 그 점에 동감했다. 내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든 비장애든 제대로 향유하기 어렵겠다라고.
어느덧 반환점이 보인다. 22Km 코스가 가양대교를 돌고 다시 난지한강공원으로 오기에 평지여도 만만치 않았다. 쾌청한 날씨는 반대로 햇볕이 너무 뜨거워 선크림을 발랐음에도 목과 팔, 얼굴 등이 조금씩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반화점을 돌고 휴게소 겸 체크포인트인 CP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윤채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나에게 궁금함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왔을까 부터, 나의 앞으로의 진로 계획이나 장애에 대한 생각 등이 그것이다.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알려진 가양대교의 지리적 특성도 빼놓지 않고 물어봄은 물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여과 없이 나에게 전한다, 소통한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내 생각을 묻는 건 개인적으로 큰 변화라 생각한다. 10년 전 만난 윤채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라. 당시 SNS상에서 서로의 활동을 눈여겨보다 이 친구가 속한 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모임 그룹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하던 이 친구, 그러나 나와의 지속적인 만남과 다양한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공감하려는 태도로 점점 바뀌고 있었다.
과거 장애인복지현장에서 근무했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기본적으로 장애 당사자와 보호자들은 마음 속 상처를 지니고 있다. 크든 작든, 어떤 이유에서든 말이다. 비장애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독 더 크게 받아들이고 남아있다는 특징이 다르면 다르다.
이러한 민감성을 알고 그들과 천천히 라포를 형성하며 어울리다보면 어느새 진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AAC를 활용해도 그렇다. 그 진정성을 윤채와 다시 걸으며 같이 걷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결승지점까지 2~3km 남은 상황. 윤채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갈지자로 걷는 걸 보고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말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 형준아”라고 했지만 몸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듯 보였다.
나도 덩달아 애가 탔다. 이 친구를 위하는 게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였다. 무리하지 말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할까, 아니면 조금은 고통스러울지언정 끝까지 완주함에 집중할까하고. 윤채의 결연한 눈빛과 의지를 보고는 결국 독한 마음을 먹고 윤채를 끝까지 완주토록 하겠다 결심하였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정신 못 차릴 땐 소리치기도 하고 쳐진다 싶으면 뒤에서 두 손바닥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미안해 형준아”라고 말하는 윤채를 보고 “미안하다는 말 할 여력있음 두 다리에 힘을 줘, 포기 하지 마 알겠어?”라고 몰아부쳤다. 지금 생각하면 나야말로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러나 윤채는 이런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기는커녕, 고마워하며 믿고 끝까지 함께하였다.
결국 우리 둘은 제한시간 안에 완주에 성공하였다. 방금 전까지 죽을 것 같았던 표정에서 완주메달을 받고는 금사이 밝아진 윤채. 나도 덩달아 씨익 웃었다. 이렇게 우리 둘의 또 하나의 추억 한 페이지가 당당히 기록되었다.
발달장애인 대상 외부 활동이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다 보면 항상 신경 썼던 부분이 “안전”이었다. 이는 지금도 변함없는 내 기조다. 예전에는 너무 안전에만 몰두한 나머지 본의 아니게 통제를 한 적도 있었다. 나름 당사자를 배려한답시고 한 조치가 어찌 보면 다시 남길 수 없는 추억이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사회복지를 실천한다면 당사자를 믿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지켜볼 거다. 온전히 활동을 즐기고 참여를 누리도록 안전하면서도 스스로 포기 않는 분위기, 환경 조성에도 힘쓸 것이다. 그러기 위한 나와 윤채의 걸음은 지금도,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