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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Dec 30. 2021

네 저는 친구가 없습니다.

어쩌면 최적의 조건

점심때의 일이다. 부장님은 나에게 쉬는 날 뭐 하냐고 물었다. 나는 한결같이 답했다. "그냥.. 집에서 책 보고 유튜브 보고 그럽니다."


쉬는 날마저도 책을 본다는 의미는 다름 아닌 이직 준비다. 내가 N잡러를 자처하며 이렇게 사는지 당연히 모를 부장은 "내가 너 나이 때는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그랬는데, 조조는 친구가 없어?" 라며 농담조로 말했다.


'예, 저는 친구가 없네요.'


친구랑 매일 술이나 퍼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알기나 아실까. 만족스러운 미래를 위해 당장의 즐거움을 참고 또 참고 있는 미생의 치열한 삶은 그는 모를 터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 같이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내 성향상, 분명 하나는 놓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곳에 근 5개월을 지내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이 '꿀라밸' 회사에 안주하는 순간, 내 미래도 녹아내릴 것을.


물론 이곳에서의 일도 잘 맞고 말도 안 되는 워라밸에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여기서 10년 20년 근무하라고 하면 당연지사  "NO"를 외친다. (그래 맞다. 월급이 두 배로 뛴다면 YES 외칠 거다.) 욕심이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40대 직원 몇몇 분은 이따금씩 내게 귀띔해 주신다. 여기에서의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기계발을 충분히 하라고. 솔직하고도 따뜻한 조언이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주말에 자소서를 쓰고, 책을 읽고, 밀린 신문을 읽는 등 공부를 하는 편이다. 그러다 이따금씩 물릴 때가 있다. 유튜브와 자전거로도 해결이 안 되는 때, 폭발하면 친구를 꼬셔 한 잔 때린다. 친구는 한 달에 2번 만날까 말까 한다. 그렇게 내 스트레스와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오랜 동굴 속에 있으면서 배웠다.  


오랜 공부기간 탓인지 혼자 즐기는 삶이 더 즐겁기도 하다. (큰일이다) 자전거 타고 스벅에서 커피 마시면서 주간지 읽는 게 내 주말 라이프다. 그러다 보니 월급의 70% ~ 80%를 저축할 수 있다. 돈이 자동으로 모인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도 없다. 가끔 나도 연애를 해볼까? 상상할 때가 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고, 소개팅을 하자니 귀찮다. 아직 간절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러다 평생 캥거루족이 되는 건 아니겠지.


더군다나 요즘 드는 생각은 관계의 '피로감'이다. 사람을 만나는 건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도 감정 등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도리어 만남 이후 상쾌하지 않을 않을 때가 있다. 피로 회복을 위해 만났는데 기분이 썩 나아지지 않을 때면 현타가 밀려온다.


그래도 인생에 물릴 때 생각나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내가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이라도 부르면 나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 언제 어느 때고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친구라고 정의해본다. 이런 깨달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 해지는 것 같다.


문득 한 달 전 읽은 책에서 인용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 내용 일부가 떠오른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이십 대, 젊을 때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 김영하 <말하다> 中


물론 나에게도 정말 소중한 관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 혼자이며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믿는 바다. 여기서의 고독은 lonely가 아니라 독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내면의 기둥이 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고 찾아올 홀로의 시간을 버티기 위해선!


모쪼록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내 인생에 충실해서 열심히 살뿐이다. 지금껏 목표하고자 하는 바도 어느덧 많이 흐려진 상황이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누워만 있으니 사람이 축축 처졌다. 그러다가 내 삶을 톺아보니 괜히 울적했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 등등.


이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 길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 아직 내 삶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만족할 때까지 나는 계속 '친구가 없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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