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우연
회사에 또래가 없다. 어딜 가나 '눈누난나'가 돼가는 나이인데, 이곳에 일하면서부터는 다시 막내가 됐다.
그러다 보니 옆자리 과장님이 내 유일한 말동무가 됐다. 사실 말동무라고 하기엔 건방진 표현이고, 카운슬러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는 4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이다.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얘기를 터놓는다. 그러면 그는 있는 힘껏!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히 첨언을 해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언제나 '세월'에서 오는 지혜가 있었다. 여기에 경청해주는 그의 눈빛이 너무 맑아서 지퍼로 굳게 잠긴 내 입은 열려서 닫힐 줄을 몰랐다. 대화를 하다 보면 없던 희망이나 활기 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
과장님을 퇴근시키고(?) 회사에 홀로 남은 나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했다.
생각을 곱씹다가 문득, 또래 없는 회사에 다니게 된 작금의 상황이 '이유 있는 우연'일지 모른다는 생각. 가끔 과장님은 또래가 없어서 아쉽지 않냐고 묻는다. 솔직히 100일이면 5일 정도는 심심할 때가 있다. 이곳에서 상사를 씹어야 할 일은 없지만, 예컨대 "야 바람이나 한번 쐬고 오자"라고 편하게 대할 사람 한 명 없는 건 가끔 아쉽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 이런 어른들이 배치된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느 책에서 어떤 힘든 경험이나 상황에 대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설계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떠냐고 했다. 또래 없는 게 힘든 상황은 아니지만, 있었으면 내가 지나치게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정신 못 차리고 허송세월 보내지 말라고, 우주의 기운(?)이 쿨하지만 따뜻한 어른들 사이에 나를 일부로 데려다 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또래가 없어서 다행이다.
갑자기 치킨이 당기는데 또래오래 치킨 말고
또래가래 치킨을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