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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Jan 07. 2022

잠과 꿈과 돈 사이에서

당신이 열심히 사는 이유

일에 진심인 친구가 있다. 업무 특성상 바쁠 때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동강도가 거의 70년대 초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거의 48시간을 깨어있었다. 잠이라는 건 그나마 책상 의자에 앉아 조는 정도. 누워서는 3시간 잔 게 전부. 커피 5잔으로 이틀을 버텼단다. 그는 이러한 ‘밤샘 야근’은 달에 2~3번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을 포기한 대신 그만한 임금을 받았다. 일종의 생명수당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친구의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생각해보면 주변에 고된 노동으로 수면을 빼앗기고 있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 말이다. 특히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K직딩들이 그러 하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잠을 아껴 돈을 번다.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수면을 희생당한다. 그나마 코로나로 회식문화가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술자리를 벌이는 꼰대는 있다. 이러다 수면시간뿐 아니라 ‘수명시간’ 마저 단축되는 건 아닐지.

 

한 언론사에서 2개월 간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출근시간이 새벽 6시 반으로 무척 일렀다. 집과 회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인턴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지각하면 그날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바짝 세웠다. 너무 바짝 세웠나? 잠이 안 왔다. 평소 늦게 자는 습관 탓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잠을 줄였다. 그렇게 두 달간 새벽 4시 반에 현관을 나섰다.  


동이 트기 전 집 밖을 나서는 건 묘했다. 이따금씩 새벽배송 중인 쿠팡맨을 마주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고요한 새벽 속에서 먹고살아보겠다고 새벽같이 나서는 두 청년. 괜한 동질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잠을 아껴서 꿈을 꾸고, 돈을 벌고 있었다. 하지만 악착같이 깨어서 꾸는 꿈은, 누워서 꾸는 개꿈과 별 다르지 않았다. 희미해졌고 멀어졌고 잊혀졌다. 쿠팡맨은 달랐을까? 그가 부자가 됐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저 ‘열심히’ 만으로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란 단어는 희망적이다. 그래서 잠을 포기하고 ‘일단’ 열심히 살아보는 한국인이 참 많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잠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데,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다시 잠을 산다는 것이다. 호캉스를 떠난다던가, 나만의 휴식 공간을 탐색하는 것, 수면을 위해 온갖 장치들을 구매하는 것 등이 그렇다.  힘겹게 확보한 나의 수면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고, 따뜻한 곳에서 취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소비 같다. 잠과 꿈과 돈…


모순적이지만 요즘에는 잠을 못 자서 괴롭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조히스트는 아니다. 가끔씩 잠을 못 잘 정도로 피곤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때, 재미있었던 그때가 아주 가끔은 그립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악한 처우와 주 1회 밤을 새우고 새벽 3시 반을 넘겨 돌아가던 때. 그땐 분명 족같았는데 말이지.돌이켜보면… 뜨거웠다.


지금은  따뜻하고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를 워라밸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하겠지만 최근들어 지루하다는 표현을 입에 자주 올린다. 사실  편안함이 지겹다기보다는 열정이 사라진  하루가 지겨운  아닐까. 다시 꿈꾸고 싶고 다시 두근거리고 싶다.   자도 좋으니 설레고 싶다. 막연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달리던 때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잠과 꿈과  사이에서 오늘도 해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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