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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까치 Dec 17. 2017

혼밥이 눈치 보이는 당신에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책 소개

스마트폰을 들고 엄지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누구에게든 연락이 가능한데 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어쩌면 너무나 손쉽게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기에 더 외로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외로움만 가득한 세상으로의 ‘접속’을 선택한 것이지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시간에 대해 직언을 날립니다. 기꺼이 고독을 누리라고 말입니다.



책 쓴 사람

지그문트 바우만과 그의 트레이드 마크 파이프담배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사회학자 입니다. 그는 대표저서 "액체 근대"에서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써 현대인의 삶의 불안정성을 설명합니다. 바로 현대인의 삶의 모든 영역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인다고 것인데요. 지나치게 유동적인 사회는 계속 유행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유행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대인은 소비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개인의 힘이 무력해지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계속해서 변하는 유행을 좇느라 '고독'을 잃어버린 우리처럼 말입니다.



혼자를 겁내지 말아요


혼자 식사 잘 하세요? 요즘 혼밥이 유행이라지만, 사실 막상 혼자 먹기는 신경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괜히 청승맞아 보이고, 옆에서 여럿이 깔깔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나만 외톨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혹시나 혼자 먹고 있는 저를 흉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혼자는 청승맞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시나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습니다.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한 달에 무려 3천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10대 소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소녀와 같은 소통 중독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녀는 단 한 순간도 홀로 시간을 지내지 않는 셈이고, 그렇게 소통에 중독된 사람은 언젠가 고독을 맞닥뜨리게 되면 한없는 두려움에서 헤매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고독을 두려워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 두려움을 남과의 비교를 통해 안도감으로 변환하지요. 이를테면, 혼자인 누군가를 바라보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혼자가 흉이 되는 이유’가 아닐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보통 누군가 혼자 있으면 어딘가 딱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친구가 없으면 사회 부적응자고, 연애하지 않으면 매력도 인기도 없는 사람이고, 결혼하지 않으면 어엿한 어른으로서 실격인 것처럼 말입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에게 관심을 끊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명절이 두려운 이유이겠지요. 이른 바 결혼적령기가 되면, 다들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어서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다지 그닥 고맙지 않은 걱정을 해줍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흘려 듣다가도 계속 듣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결혼에 골인하면 이렇게 외치고 싶은 심경이겠지요. “야아! 드디어 숙제 끝냈다! 나도 결혼했다고!”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혼자에서 벗어나야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나 혼자 보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말이지요. 과연 그렇게 온통 남에게만 집중하고 있는다면 독립된 인격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독립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 내겠다는 것이지요. 각자가 책임을 다할 때, 작게는 자신의 인생을, 크게는 우리의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크게는 사회를 위한 위대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독은 친구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하지 않기 위해 간편한 소통의 장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리에게 독설을 던집니다.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강요되어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오랜시간동안 축적되어 온 바람직한 인간관계에 대한 모범답안이 우리를 옥죄어온 것은 아닐까요. 혼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이 우리를 감히 혼자 있지 못하게 만들어온 것 아닐까요.
 
그래도 요즘엔 그러한 억압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대표적으로 혼밥이나 혼술 같은 혼자하는 활동에 대한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혼밥, 혼술은 그동안 꺼려왔던 ‘혼자’를 기꺼이 즐기겠다고 하는 일종의 자기해방 선언입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요즘엔 일본의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의 영향인지, 퇴근 후 혼자서 맛있는 요리와 술 한잔 즐길 수 있는 선술집들도 많아졌습니다. 

드라마 ‘심야식당’은 밤에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사연 있는 손님들이 찾아와 사연을 털어놓고 주인장의 맛있는 음식으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이 드라마의 손님이 된 양,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선술집에서 한잔 술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야밤의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치유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일본 먹방 3대장


예로부터 먹는 행위는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옛날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오곡밥에 열 가지의 나물을 먹었고 귀밝이술을 나눠 마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탈하고 안녕한 내일을 기리며 마을 공동체를 다지는 동시에 영양분을 채우는 의미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설날에는 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어른이 되었다는 승급식(?)을 치르지요. 



너도 나도 혼밥족


혼밥, 혼술족들의 식사에도 역시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자신만의 회식을 여는 것입니다. 스스로 축하하고, 위로하고, 기쁨과 슬픔을 즐깁니다. 그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이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아직 그 충만한 여유와 행복감을 느껴본 적 없으신 모양입니다. 느껴본 사람이라면 부러움을 먼저 느낄 것이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눈치가 보여서 혼밥을 잘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지요. 아니, 그 때는 혼밥, 혼술이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밥은 항상 누군가와 같이 먹어야만 했습니다. 밥을 혼자 먹느니 그냥 굶는 게 당연했습니다. 혹 누군가가 혼자 밥을 먹는 자신을 목격하고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혼자만의 식사를 기꺼이 즐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더 이상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편하게 혼밥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더 이상 혼밥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지 않기 시작하였고, 우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미디어의 힘이었습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혼밥, 혼술을 낭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고, 매스컴에서는 그런 현상들을 유행이 되어간다고 보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혼밥, 혼술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 혹은 낭만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고독을 즐기기 시작하다


이제는 너도나도 혼자의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와서 혼자만의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억압되어 있던 혼자의 욕구가 드디어 해방된 것입니다.

보통 집에서 이 정도는 해먹지 않나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각자 스스로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타인과의 관계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회성 결여로 해석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공동체가 지나친 사회성을 강요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은 이제서야 균형을 맞춰가는 것 아닐까요. 이제는 공동체의 일원보다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의 스스로를 챙길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자를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함을 즐길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자, 그럼 함께 고독을 즐겨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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