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백삼홈 Oct 12. 2022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일지_마지막 이야기

이별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한 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출처: 나의 해방 일지 사진 대사_jtbc>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 들은 적이 없었다. 

어느 월요일 아침 7시쯤, 시어머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전 주 외래에서 이미 뵙고 왔고, 그동안 요양원에서 특별한 기별도 없었고, 평범한 월요일의 아침을 맞이했는데 정말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요양원에서 전한 이야기는 아침에 일어나시긴 하셨는데 다시 잠드셔서 깨워보니 깨어나질 않으셨다고 했다. 사인은 심정지였는 정확한 원인은 미상이었다. 치매 말고도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이 있었기에 그저 추측을 해볼 뿐이다. 그동안 삶이 힘들어서 나쁜 생각도 하고, 원망도 많았었는데 막상 부고 소식을 듣고 정신이 한참 없다 눈물 났다. 요양원가신지 3개월째 되었는데 이런 소식이 전해지니 더 가슴이 아팠다. 몸이 많이 아프셨던 건 아닌지, 사랑하는 아들 보지도 않으시고 눈을 어찌 감으셨는지... 그래도 우리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사는 크리스천이었으니 시어머님은 천국에 가셨겠지?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울컥 울컥 밀려든다. 


내가 죽는 날은

맑게 개인 날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은 파랗고 땅은 황토색 그리고 산들은 바다처럼

출렁거렸으면 좋겠다.

그늘 하나 없는 대낮이었으면 좋겠다.

밤하늘의 별들이 아니라 풀숲의 풀꽃처럼

빨간 점들이 빛나면 좋겠다.

바람은 흐느끼지 않고 강물은 실이에 멈춰 호수가 되거라.

떠나리라. 내 영혼은

그렇게 맑게 개인 날에

<출처 : 눈물 한 방울_이어령_77>


며칠 전 고이어령선생님의 마지막노트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내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마음으로 죽음과 마주 하고 있을까?  몇 주 전 위층 사는 나와 동갑인 그녀가 갑작스레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에 대해 깊히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어머님의 부고를 들으니 마음이 더 요동치는 듯 하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빨리 떠나셨을까? 요양원 가실 때 치매가 갑작스럽게 빨리 진행되어 상태가 매우 나빠지긴 했었다. 요양원에 보내드리기로 결정 한  남편과 함께 엄청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고 아팠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이별의 시그널이었을까? 시어머님은 어쩌면 떠날 준비를 하셨던 것이고,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의미없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결정해야 하는 많은 일들, 오랜만에 나타난 J의 태도에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일도 쉽진 않았다. 그래도 감사하게 삼일 내내 맑게 개인 날, 많은 조문객들로 시어머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추모공원 안치까지 모두 잘 마무리된걸로 다 잊어 보기로 한다. 


언젠가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를 마치는 날이 오겠지? 정말 언젠가라며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 예측하지 못했다. 

죽음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계획된 순간에 맞이 하지 못한다. 모질게 떠나는 사람도, 따듯하게 떠나는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이별은 너무 큰 아픔이다. 

부고 후 여전히 비슷한 일상 생활을 하다 한 번씩 크게 올라오는 슬픔과 후회, 죄송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저 부족한 며느리와 길고도 짧은 12년간의 삶이 어머님에게 어땠는지  '불행하고 힘들었다.'고만 느끼시 않으셨길...천국에서는 부디 아프지 않고, 평안하시다가 다시 만나는 날에는 '애썼다' 서로  반갑게 웃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장례를 치른 후 살아가면서 두 가지는 잊지 말아야 겠다 다짐했다. 삶에 대한 원망이나, 후회보다는 감사하는 일에 더 애쓰며 살 것,  마음으로 아껴주었던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잊지 말것. 위로가 필요한 순간 내 상황과 마음의 서운함 보다 먼저 위로를 건네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겠다. 아무 말 없이 먼저 손잡아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시어머님이 장례에 한걸음에 달려와 위로해 준 친구들, 장례를 마친 후, 뒤늦게 소식을 전했음에도 '왜 부르지 않았느냐, 말했으면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왔을텐데'라며 따뜻한 말과 위로를 전해준 지인들에게 뭉클함과 감사한 마음이 전해져 오랜만에 따뜻했다.


결혼 후 행복함 보다는 힘든 일들의 연속으로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랬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온 듯하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기에는 아직 시간이 꽤 많이 필요 할 것 같다. 

갑작스럽게 이별로 마무리된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를 읽어 주신 애정 하는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오늘도 시집살이로 힘든 삶 가운데 있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조심스러운 위로를 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