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외주 준 인간

by Lohengrin

집 전화번호는커녕 내 휴대폰 번호조차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특히 정년퇴직 후 명함을 건넬 일이 줄어들면서, 말로 번호를 알려주려다 찰나의 정적 속에 갇히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곤 한다. 비단 전화번호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번호가 헷갈리고, 익숙해야 할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엉뚱한 번호를 누르다 들리는 삐삐소리 경고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이제 나이 60을 넘겨 치매의 초기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는듯 하여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뭐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내 주변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호소한다. 나이 불문, 직업 불문, 성별 불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증상은 구조적, 사회적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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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 즉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저장 능력에 있는듯 하다. 휴대폰의 진화사를 반추해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벽돌폰'이라 불리던 모토로라가 무선통신의 시대를 열었을 때만 해도 전화번호 저장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홍콩 영화 속 삼합회 보스들이 들고 다니던 거대한 무선전화기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을 뿐, 번호는 여전히 인간의 머릿속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삐삐라는 무선호출기에 찍힌 숫자를 보고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던 풍경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미 인간의 기억은 외부 장치로 조금씩 이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의 등장은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기억의 외주화'라는 획기적인 편리함은 수첩과 뇌에 저장되던 정보를 디지털 단말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번호는 이름과 닉네임 뒤로 숨었고, 우리는 숫자를 외울 필요도, 수첩을 뒤적일 필요도 없게 되었다. 편리함을 얻은 대가로 우리의 뇌에서 숫자가 차지하던 공간은 삭제되었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 단계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를 살고 있다. 기억의 외주화를 넘어 모든 정보의 탐색과 분석까지 실리콘 반도체에 위탁하는 시대다. 모르는 것이 생겨도 인터넷을 뒤질 필요조차 없다. 질문 한 마디면 AI가 정답과 해답을 즉각적으로 내놓는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지능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안다는 것'은 신경세포들이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견고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필요할 때 이를 인출해내는 과정이다. 외우는 행위는 뇌 속에 기억을 저장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이 과정을 통해 신경세포들은 비로소 '정렬'된다. 인출되지 않는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머릿속에 든 정보를 말과 행동으로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의사결정을 돕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생성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는 결국 인간 고유의 비판적 사고력과 지식 생산 능력을 퇴화시키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인식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로 2011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된 '구글 효과(Google Effect)'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중에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정보는 더 이상 뇌에 저장하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며 '외우는 공부'를 폄하했던 교육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디지털 깡통'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노래조차 1절을 온전히 외우지 못하는 현실은 노래방 기기가 가져온 기억력의 퇴화다.


기억하지 않는 뇌는 더 이상 사유하지 않는다. 멍청한 껍데기만 남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는 다시 '암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뇌의 가소성은 쓰면 쓸수록 강화되는 법이다. 기억력 감퇴를 방어하고 인간 지성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부터 하루 한 편 시(詩) 한 구절이라도 정성껏 외워보려 한다. 외부에 맡겼던 내 사유의 주권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찾아오는 일, 그것이 진정한 공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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