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라, 우리들의 짱가.”
이 구절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멜로디를 떠올린다면, 아마 1970년대 후반의 정서를 기억하는 세대일 것이다. 1978년 TBC-TV에서 방영했던 만화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가인 이 노래는, 개그맨 최양락 씨가 코믹하게 불러 더욱 대중적인 생명력을 얻기도 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방송은 지금처럼 24시간 편성이 아니었다. 오후 5시 무렵부터 30분간의 화면 조정 시간을 거친 뒤, 저녁 6시를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그 황금 같은 첫 시간대를 차지한 것은 언제나 어린이 프로그램들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철인 28호' '마징가 Z' '로보트 태권 V'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요술공주 밍키' 그리고 '황금박쥐' 같은 전설적인 만화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주소년 짱가' 역시 그 시절 아이들의 동심을 흔들었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만화의 구체적인 줄거리보다도, 주제가의 강렬한 멜로디와 가사가 우리 뇌리에 훨씬 깊이 각인되어 있다.
오늘 아침, 50년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 이 해묵은 만화 주제가를 다시 소환한 이유는 오로지 첫 소절 때문이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문장 말이다. 이 구절에 담긴 ‘언제 어디서나(Anytime, Anywhere)’의 정신은 비단 영웅의 등장을 넘어, 우주와 자연, 그리고 우리 생명이 작동하는 근원적인 원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인 ‘항상성(Homeostasis)’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움직여야 하는 숙명적 존재다.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 즉 변화에 대응하는 동적 균형이 깨진 상태를 아프다고 하고 죽음이라고 한다. 생명의 에너지 공장이라 불리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산소를 이용해 ATP를 생성하는 전자전달계 대사가 일어난다. 이 경이로운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약 2% 정도의 확률로 활성산소가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활성산소는 강력한 산화력으로 세포를 공격하는 독이지만, 생명 활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흥미로운 지점은 진화의 선택이다. 생명은 이 위험한 독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 활성산소를 적정 수준으로 제어하여 세포의 성장, 분화, 그리고 외부 침입자에 대항하는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핵심 신호 분자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독을 순간순간 약으로 바꾸어 쓰는 생명의 현명함이 진화의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셈이다.
생명은 왜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만들 때 활성산소라는 위험천만한 불꽃이 튈 줄 알면서도 이 방식을 고수할까? 그것은 시간적·공간적 틈을 주지 않고 즉각적으로 에너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생명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나노초(10억 분의 1초) 단위로 정교하게 작동하는 항산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활성산소가 생성되는 즉시 이를 처리하여 DNA 손상이나 만성 염증을 유발하지 않도록 동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만약 이 처리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균형이 무너지면, 그것을 노화라 하고 죽음’이라 한다. 결국 건강하다는 것은 활성산소가 아예 없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엄중한 중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신비에 가까운 상태를 의미한다.
세상을 살아내는 우리 인간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과함도 부족함도 모두 문제가 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적절한 균형과 항상성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생명 유지의 본질이자 삶의 본질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며, 산다는 것은 그 변화에 적응해 가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매 순간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를 자주 놓친다. 이는 단순히 주의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우리 인식 구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시신경이 지나가는 자리에 시각 세포가 없어 사물을 볼 수 없는 시각적 맹점이 존재하듯, 우리의 인지 체계에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맹점이 존재한다. 물이 100도에서 끓어 액체에서 기체로 상태가 변하는 ‘상변이’를 봐도, 100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물은 겉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가해지는 열은 온도를 올리는 대신 분자 간의 결합을 끊는 데 쓰이는 ‘잠열’ 상태로 숨어 있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그 내부의 치열한 변화를 낚아챌 수 없다. 상이 변하는 찰나의 순간은 너무나 짧아, 대개는 변하고 나서야 비로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존재와 삶,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은 쉼 없이 바뀌고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미세한 변화들을 눈치채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그 순간순간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변화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벚꽃이 진 자리에 진달래와 철쭉, 라일락꽃이 조용히 순번을 바꾸어 피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 마음 안에서 행복과 웃음, 분노와 슬픔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공존하고 교차하는지도 목격할 수 있다.
세상에 정해진 완벽한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이 끊임없이 항상성을 찾아 요동치듯, 우리가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비로소 길이 될 뿐이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는 짱가처럼, 우리 몸속 미토콘드리아가 찰나의 순간마다 활성산소를 다스리며 에너지를 만들어내듯, 우리 역시 삶의 불균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지혜, 그리고 그 변화의 파도를 타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나아가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50년 전 만화 주제가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엄청난 기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