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후반부터 90년 초반까지의 빌보드 음악 이야기
1988년의 팝 음악계는 1987년을 이어서 조지 마이클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었다. 조지 마이클의 ‘Faith’는 멋진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든 그의 마초적인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뮤직 비디오와 함께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이후 ‘Got My Mind Set on You’,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가 차례로 차트 1위에 오르며 1988년은 조지 마이클의 해가 되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식지 않는 열기도 대단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를 차트 1위에 올렸고, 마이클 잭슨은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로 쉼 없이 차트에 오르며 팝의 황제와 황후의 저력을 이어갔다.
영국 출신의 릭 애슬리(Rick Astley) 역시 ‘Never Gonna Give You Up’과 ‘Together Forever’로 산뜻한 유로댄스의 인기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여기에 빌리 오션(Billy Ocean)의 ‘Get Outta My Dreams, Get into My Car’와 쿠바 출신의 여걸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and Miami Sound Machine)과 소녀 아이돌계의 라이벌, 티파니(Tiffany)와 데비 깁슨(Debbie Gibson)이 가세하며 댄스뮤직의 유행을 선도했다.
팝 메탈계의 ‘오빠들이 돌아왔다’
이처럼 80년대의 팝 음악계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같았다. 매주 새로운 신보가 쏟아져 나왔고, 막 접하는 새로운 앨범의 음악들은 상자속의 초콜릿처럼 다채로운 맛과 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뉴웨이브 군단의 ‘두 번째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 이후 미국의 음반 시장은 팝과 록, 메탈, 영화 O.S.T, 레게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종합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영국 밴드들의 화려한 외모와 독특한 음악성에 매료당했던 미국인들은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신토불이 밴드들을 발굴해 냈다.
우리가 흔히 팝메탈이나 LA메탈이라고 부르는 글램메탈(Glam Metal) 밴드들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었다.
록스타의 충격적인 결말이 된 인엑시스
1977년 호주의 시드니에서 키보드 앤드루 패리스(Andrew Farriss), 드럼 팀 패리스(Tim Farriss), 기타 존 패리스(John Farriss) 삼형제를 바탕으로 결성된 6인조 록밴드 인엑시스(INXS)는 80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INXS]로 일약 호주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1983년 싱글 ‘The One Thing’으로 미국 시장에 데뷔한 인엑시스는 ‘New Sensation’, ‘Devil Inside’, ‘Never Tear Us Apart’ 등의 히트곡으로 미국에서만 6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1987년 발표한 앨범 [Kick]의 ‘Need You Tonight’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맨 엣 워크(Men At Work)의 뒤를 잇는 호주출신 탑 밴드의 반열에 올랐지만, 밴드의 최고 스타이자 프론트맨 이었던 꽃미남 보컬 마이클 허친스(Michael Hutchence)가 1997년 11월 시드니의 호텔방에서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격히 활동이 위축되었다.
뉴저지에서 온 팝 메탈의 시조 본 조비
미국 뉴저지 출신의 대표적인 팝 메탈 밴드이자 꽃미남 밴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Bon Jovi’는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New Jersey]을 들고 돌아왔다.
리드 싱어인 존 본 조비(Jon Bon Jovi),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키보드 연주자 데이비드 브라이언(David Bryan), 드러머 티코 토레스(Tico Torres)로 구성 된 밴드 본 조비는 1984년 첫 싱글 ‘Runaway’가 무려 40주나 빌보드 핫 100에 오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986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Slippery When Wet]의 수록곡 ‘You Give Love a Bad Name’, ‘Livin' on a Prayer’, ‘Wanted Dead or Alive’의 메가 히트로 본 조비는 잘생긴 록밴드의 대명사로 불리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권총과 장미로 상징되는 건즈 앤 로지스
1988년 본 조비의 식을 줄 모르는 아성에 도전장을 낸 혜성 같은 신예밴드가 있었다. 보컬 액슬 로즈(Axl Rose)와 기타의 트레이시 건스(Tracii Guns)가 각자 몸담았던 ‘Hollywood Rose’와 ‘LA Guns’에서 이름을 따서 만든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는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1987)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펑크와 글램록의 조화 속에 정통 하드록과 미국식 헤비메탈의 계보를 잇는 건즈 앤 로지스는 액슬 로즈의 괴성에 가까운 샤우트 창법과 슬래쉬의 경이로운 기타 연주와 함께 LA메탈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롤링스톤지로부터 ‘1980년대 최고의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헤비메탈계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는 [Appetite for Destruction]에서는 ‘Sweet Child o' Mine’가 싱글 차트 1위에 ‘Paradise City’가 5위에 올랐다.
연이어 싱글차트 7위에 오른 ‘Welcome To The Jungle’은 198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에 삽입곡으로 쓰였으며 밴드멤버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해주었다.
밴드 포이즌의 음악보다 더 마약 같았던 백스테이지 스토리
건즈 앤 로지스의 성공에 뒤이어 독약 같은 마성으로 팬들을 휘어잡는 메탈 밴드가 등장했다.
글램 메탈을 이른바 헤어 메탈(Hair Metal)이라고 부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바로 포이즌의 데뷔 앨범 [Look What the Cat Dragged In]이었다. 앨범 재킷 사진 속의 멤버들은 각양각색으로 컬러를 입혀 크게 부풀어 올린 헤어스타일과 짙은 화장을 하고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들의 화려하고 중성적인 차림은 오히려 소녀팬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아, 이후 등장하는 팝 메탈 밴드들의 비주얼에 큰 영향을 주었다.
‘Every Rose Has Its Thorn’은 글램 메탈 밴드 포이즌(Posion)의 두 번째 앨범 [Open Up and Say... Ahh!]에 실려있는 파워 발라드곡으로 3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길게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얼굴을 담은 앨범의 아트웍이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해서 혓바닥 위에 스티커를 붙인 채로 판매가 되었다.
화려한 외모와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두성을 울리는 가창력을 자랑하던 글램메탈 밴드들은 80년대를 화려하게 꽃피우고 90년대와 함께 저물어갔다. 지나치게 외모에 집중하는 그들의 음악을 폄하하거나 계집애들이나 좋아하는 밴드라는 조롱을 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열고 풍미하는 것이 단지 외모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머틀리 크루(Motley Crue), 신데렐라(Cinderella), 워렌트(Warrant), 익스트림(Extreme) 같은 메탈밴드들이 보여준 음악은 가히 존경을 받을만한 80년대의 감성이자 글램 메탈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확립시킨 열정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