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가 말라리아를 퇴치하다
작년(2024)년 10월에 한국언론의 해외뉴스란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인류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단신이 해외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이집트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말라리아를 퇴치하였음을 공인받았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국내에서는 보건분야에 근무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말라리아는 인류의 기원부터 우리의 존재에 실질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을 가해왔다. 아마도 수만년간 동굴속에 살던 인류의 조상들 중에는 원인모를 고열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말라리아가 인류의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집트(기원전 1500년), 인도(기원전 1000년), 중국(기원전 270년)등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해당 기록들에서 묘사하는 증상이 말라리아와 유사할 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처음으로 말라리아라는 기생충이 인간의 혈액에서 관찰된 것은 1880년에 Alphonse Laveran라는 과학자에 의해서 였다. 이후로 말라리아는 다양한 동물의 혈액에서 발견되고, 1897년 Ronald Ross에 의해서 말라리아 확산의 원흉으로 모기가 지목되었다. 이후로 말라리아의 확산과 신체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증식과정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말라리아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해마다 2억명5천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확진을 받고, 이중 60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악의 질병이다.
말라리아는 그 치명적인 증상으로 인해, 흑사병, 스페인독감 등과 함께 인류사의 방향을 바꾼 질병중 하나로 꼽힌다. 11세기, 12세기에 이탈리아 로마 남부의 폰티네습지는 모기의 산란지가 되어 로마제국을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해주었다. 로마의 공기(Air of Rome)은 원인모를 병에 패퇴한 침략자들이 로마의 ‘방어막’에 붙여준 이름이었다. 13세기 징기스칸의 유럽공략을 중단 시킨 것도 헝가리 평원의 모기떼로 추정되어 진다. 18세기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10만명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영국과 프랑스에서 파병된 군인 9만명중 7만명이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사망했다. 19세기에는 프랑스가 미국에 앞서 파나마 운하의 건설를 건설하다가 말라리아로 인한 파견인력들의 높은 사망률로 인해 8년만에 공사를 포기했다. 식민지 시대에 백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을 ‘백인의 무덤(White man’s Grave)로 부르며 진입하지 못하게 만든 것도 말라리아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직접 진출하지 못한 것이 아프리카 국경선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에서는 습지면적의 축소, 가축과 거주 공간의 분리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말라리아가 감소하게 되었다. 1900년에 이탈리아는 전서계에서 처음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모기의 산란지를 없애고 치료약(Quinine;퀴니네)를 보급하는 등의 운동을 벌였다. 이 시기에 과거에 로마를 지켜주었던 폰티네 습지에서도 배수작업이 진행되었다. 말라리아 연구와 퇴치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는 1965년에서야 비로소 말라리아를 퇴치했다고 ‘공표’할 수 있었다.
2024년 10월에 말라리아 퇴치에 성공한 이집트는 1930년대부터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말라리아 퇴치운동 초기에는 모기의 근거지가 되는 물 웅덩이나 논을 주거지 근처에서 없애는 단순한 작업에서 시작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 대전기간에 중인 1942년에 이집트에서 3백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말라리아 확진을 받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집트는 진료소 16개소와 의료인력 4000명을 투입하였다. 1969년 세계최대규모의 아스완댐을 건설하면서 고인물에서 모기가 증식하여 말라리아 감염사례가 폭증하였고, 이집트 정부는 아스완댐 상류의 수단정부와 협력하여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01년부터 이집트 정부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본격 작업에 착수해서 말라리아의 조기 발견, 치료 체계를 만들고 전국민에 대한 무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만으로 국제보건기구의 ‘말라리아 청정지역 인증’을 받기에는 부족했다. 말라리아 청정지역으로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추가로 붙는데, 1. 말라이아 감염 사례가 0건이어야 하고, 2. 감염사례 0건의 실적이 3년간 연속으로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3. 말라리아 재발/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등의 조건이다. 이집트는 이러한 조건를 충족한 이후에 ‘인증’을 받은 셈이니 한세기에 이르는 국가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말라리아 퇴지를 위해서 글로벌 말라리아 프로그램(GMP; Global Malaria Programme)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전세계 국가를 세개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 말라리아가 원래 없거나 자연적으로 소멸한 국가, 말라리아를 퇴치한 국가, 나머지 국가(말라리아가 있거나, 말라리아에 대한 보고가 되지 않은 국가로 추정)
여기에서 말라리아를 성공적으로 퇴치한 것으로 공인될 국가들 중에, 불가리아, 아이제르바이잔 처럼 온대성기후에 속해있거나, 싱가폴, 카포베르데처럼 섬나라인 경우는 말라리아 퇴치가 어느 정도 실행 가능할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모로코(2010년), 엘살바도르(2021년), 이집트(2024)는 기후, 인구, 도시의 복잡성을 고려할때,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에 말라리아 청정국으로 인증받은 중국도 놀라운 성공사례인데, 70년대 연간 3천만명이 말라리아에 시달리던 국가에서 2017년부터 1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없는 국가로 획기적인 보건의료의 승리를 이루어 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나머지국가’로 분류되어 있는데, 말라리아에 대한 보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보건기구의 홈페이지에서 말라리아 청정국으로 인증받기 위한 필요절차는 10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그 내용과 과업이 꽤 방대하여, 대한민국의 보건당국에서 굳이 ‘인증’에 행정력을 소모해야하는가 싶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 퇴치(Elimination)과 박멸(Eradication)을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퇴치는 특정 국가에서 말라리아 전염위험이 없어지는 것이고, 박멸은 지구상에서 말라리아에 대한 걱정을 영원히 제거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말라리아가 박멸되는 “Malaria-Free World”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는 무척이나 도달하기 힘든 목표이다. 이집트, 중국, 엘살바도르에서 말라리아 퇴치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 중남미 국가들, 동남아시아 국가 등, 기후, 인구밀도, 도시화의 정도에서 극악의 난이도를 보유한 국가들이 즐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현재의 말라리아 퇴지 방식을 유지하는 한, 2050년까지도 연간 1천1백만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도 향후 말라리아와의 전쟁의 성패는 말라리아 백신 등 새로운 기술개발에 달려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연간 2억명의 인구가 말라리아에 걸리고, 이중 60만명이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는다. 60만명중 대부분은 아이들이다. 아프리카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말라리아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나 동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요즘에 잘 안 보이던데, 어디 다녀왔어?’, ‘아니 말라리아 걸려서 1주일동안 집에 누워있었어’와 같은 대화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보다는 드물지만, 슬프게도, 누구누구의 아이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소식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이렇듯, 열대지방에서 말라리아는 여전히 실질적으로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이집트가 말라리아를 퇴치하는데 성공했다’와 같은 기사가 열대지방의 국가/국민들한테는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