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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by 종이밴드 Mar 01. 2018

9화. 아직, 계속 쓰고 있습니다

감성/공감/생각/일상/에세이 종이밴드 1.5집 -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9화. 아직, 계속 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연락이 소원하던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 요즘 뭐 하고 지내?


익숙한 메시지임에도 곧바로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물음. 다행히 기본 답안이 정해져 있다.


- 그냥 그렇지 뭐. 넌 어때?


이제는 상대방의 본론이 나올 차례. 꽤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경우, 예상되는 답도 정해져 있다. 결혼 예정이거나, 아이를 낳았다거나. 아주 드물게 보험을 권한다거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음 대답을 지켜보자 의외의 답안이 날아왔다.


- 응, 나도 똑같지 뭐. 그런데 아직 그거 해?


여기서 상대방이 말한 ‘그거’란 아마도 내가 ‘그때도 했고, 아직도 하는 일’을 지칭하는 것일 테다. 그다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답한다.


- 응, 계속 쓰고 있어.


어떻게 보면 이런 대화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인지도 모른다. 그저 외로움의 공백을 메우려 누구든 스치길 바란 것과 다름없다. 상대방에게는 그저 사소한 안부를 주고받는 것으로 흐려진 관계를 덧칠하는 의식이었을지 모르고 나 역시 여기에 응하는 것으로 작은 안도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분만이 다가 아니었다. 나는 대답 후 묘한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우리가 연락하고 지내던 때, 내가 글쓰기를 하고 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흐릿하게 ‘그거’라고 칭한 것일 테다. 그런 물음에 나는 굳이, 계속 쓰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왜 굳이 그렇게 대답한 것일까. 지금 문득 깨달았다. 바로 ‘아직’이라는 부사 때문이었다.


사전에 의하면 ‘아직’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나 상태 또는 어떻게 되기까지 시간이 더 지나야 함을 나타내거나,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


내게 글쓰기는 여전히 ‘아직’이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일상이기에 불쑥 그렇게 답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그것은 그리 궁금한 물음은 아니었다. ‘그거’에 대한 대화는 거기서 마무리. 이후 대화는 어색한 신변잡기로 이어지다가 다시 기본 답안으로 종결되었다.


- 그래, 담에 한번 보자.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을 이 사소한 대화는 잔잔한 수면 위에 던져진 조그만 자갈처럼, 내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기 얼마 전, 여러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유명하지 못한 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없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SNS 팔로워 몇 만 명은커녕 100명 남짓도 겨우 유지하고 있는 내가 과연 저들과 어울릴 자격은 있는 건가. 스스로 재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던진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조금 이름이 알려진 누군가의 썰렁한 농담에 웃고 있지만, 그 와중에 맥주 500ml 피처 잔을 채울 때마다 이름을 되묻는 이를 보며 내심 마음이 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괜히 안 나가던 모임에 나와서.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차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씁쓸한 기분을 털어내지 못하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서 글을 쓰고 있던 건가.


물론 글쓰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그런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꿈과 희망만으로 버티기에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로 이기고 싶은 상대도 없고, 이길 수도 없기에 오기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럼 왜 아직도 계속 쓰고 있는 걸까.


결국 이런 글을 쓰면서도 명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 멋진 사유가 담긴 문장으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지만, 무슨 말을 해도 진심이 아닐 것 같아서 할 수가 없다.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만 들뿐이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써는 아직도 계속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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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맛있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제로위크(글) + 홍양(그림) jong2b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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