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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by 종이밴드 Sep 07. 2018

15화. 모든 것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공감/생각/일상/에세이 종이밴드 2집 -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15화. 모든 것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부터 내게는 고질적인 병이 하나 있었다.

시작하는, 그리고 또 시작하는.


시작은 늘 두근거렸고 새로웠다. 그러다 그 일에 능숙해지고, 흥미를 잃어버리면, 고민이 시작됐다.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이 일을 사랑하는 게 맞나.


그러다 또 어떤 새로운 시작 지점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시작했다. 끈기 없는 번뇌는 그렇게 내 삶을 조금씩 이쪽으로 옮겨 놓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부터 하나만 고르는 걸 잘하지 못했다. 티셔츠를 고를 때도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서 고민하다 두 벌을 샀고, 외식 메뉴를 고를 때도 모든 메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세트 메뉴를 고를 때가 많았다. 물론 그런 면이 일상생활에 큰 문제를 주지는 않았다. 세상은 점점 선택권을 늘려가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하나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밥벌이와 직면한 ‘일’로 연결될 때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수많은 시작과 새로운 선택을 하는 나의 (이력서에 기재된) 이력은 면접관이 보기에 통일성을 찾기 힘들었다.


나는 결국 자의 또는 타의로 여러 일을 시도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일이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여전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내게 ‘멀티플레이어’라는 격려성 명칭을 부여하기도 했고, ‘재주가 많아서 그렇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자유로워진 후에도 나는 계속 거기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얼마 전 이런 내 성향을 잘 아는 한 친구로부터 선물처럼 TED의 한 강연 영상 링크가 도착했다.


강연의 제목은 <Why some of us don't have one true calling - 어떤 사람들에겐 하나의 천직이 없는 이유>였다. 강연의 주인공은 책 <모든 것이 되는 법, 웅진지식하우스>의 저자 ‘에밀리 와프닉’이었는데 그녀는 자신, 또는 자신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길을 걷는 사람을 ‘다능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커리어 코치이자 강연가, 블로거이며, 뮤지션이자 디자이너, 법학도와 영화인이기도 했다) 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방황인'이나, 한 길을 파지 못하고 이탈된 '낙오자'가 아닌, ‘다능인(multi-potential-lite)’이라는 것이다.


다능인은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뭐든지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뭐든지 최고로 흥미를 갖는 사람 - 에밀리 와프닉


순간 나는 나조차 어떤 틀 속에 나란 인간을 가두어두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한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 길을 탐험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강연을 듣고 난 후,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책 제목과 강연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생각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이미 다능인인 사람들도.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받던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디자이너였고 서점 주인, 경찰이기도 했으며 화가 또는 배우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은 점점 더 범주를 넓혀 갔지만 선택권은 줄었다.

평생 한 가지 직업에 매진한 부모님께 늘 여러 갈래 길을 오가는 나는 걱정거리였고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에게 나는 ‘뭘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애’였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에밀리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는 우리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전부’ 될 수 있는 영감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희망도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심리학자이자 바이올린 제작자, 삽화가이자 기업가이자 선생님인 사람, 사업가이자 작가인 사람, 배우이자 가수이며 요리가인 사람, 바리스타이자 유튜버인 사람.... 셀 수도 없이 많은 직군에 교차지점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가끔 그들은 이런 질문이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가수면 가수 본업이나 잘 할 것이지. 연기는 왜 해?"

"엥? 갑자기 작가를 한다고요? 그 정도 재력이면 대필 작가를 쓰셔도 될 텐데."

"그런 건 취미로 하면 되겠네!"


물론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삶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 처음부터 의사, 선생님, 영화감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 누군가의 삶에는 하나의 길이 언제나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지금은 글을 쓰지만 그림도 그린다. 에세이도 쓰고 소설도 쓰고 그림책도 만든다. 영상편집이나 음성 편집을 하고 때로는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할 때, 나는 진지하다. 각각 최고의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하나로 융합되어 시너지를 내는 순간도 있다.


물론 시도가 많다고 해서 성공률이 높거나 돈을 몇 배로 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에게는 이런 시도가 여전히 한심해 보이거나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누구보다 나를 인정해주려고 한다. 언젠가 또 새로운 시작점이 보이면,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다시 내게 시작할 기회를 줄 것이다.


끝으로 혹시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누군가에게도 쑥스러운 응원을 보내고 싶다.

'모든 것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인생은 한 번이니까 계속해 봅시다!'라고.


여러분의 호기심을 따라 토끼굴로 내려가세요.
교차점을 탐험하세요.
내면의 길을 수용하는 것은 더 진실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계가 우리 다능인을 필요로 합니다. - 에밀리 와프닉





글. 제로위크 / 그림. 홍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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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종이밴드 직업출간작가
따뜻하고 맛있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제로위크(글) + 홍양(그림) jong2b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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