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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by 종이밴드 Sep 28. 2018

18화. 취향의 문제

공감/생각/일상/에세이 종이밴드 2집 -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

18화. 취향의 문제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명동에 나갔다가 문득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흠- 뭔가 재미없어 보이네.' 라는 게 나에 대한 나의 감상이었다.


작년부터 미니멀리즘에 나름 심취했던 나는 가지고 있던 옷들을 거의 정리하고 무채색의 기본 옷들만 옷장에 남겨놓았다.


애플 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니트 터틀넥과 청바지를 자신의 시그니처로 만들지 않았던가.


나도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버리면 좀 더 생활이 간편해지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정리를 거듭하다 보니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무난하게, 그야말로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계절별 옷 몇 벌만 남게 되었다. 물론 좀 더 감각이 있었더라면 남은 아이템만으로도 책 속의 미니멀리스트들처럼 멋진 모습을 완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 기준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원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쇼핑에 대한 욕구를 봉인 해제하고 다시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시간을 들여다보아도 도무지 내가 원하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즐겨 찾던 쇼핑몰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취향이 바뀌어버린 걸까.

아니면 취향이 사라진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사람들은 누군가 처음 만날 때 보통은 이름을 묻고, 취향을 묻는다.

주로 기본적인 먹고 마시는 것부터.


음료는 뭐로 하시겠어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그리고 좀 더 사이가 가까워지면 좀 더 구체적인 취향을 묻고 답하게 된다.


좋아하는 음악, 운동, 공연, 영화, 책, 냄새, 성격, 이상형…….


생각해보니 내게 미니멀해진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도무지 위의 물음에 대해 딱히 '이것이다!'라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취향도 거기에 맞게 변해가므로.


한동안 어떤 '기호'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어떤 핵심 없이 비우려고만 한 나는 지금 이 시점의 내 취향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선택을 피하고자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한때, 단체생활을 하던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편이 '주로'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람이 여럿인 장소(특히 회사)에서는 각자의 취향을 모두 융합하는 데 애를 먹고는 했기 때문에 '아무거나'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이렇게 절규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제발 다들 아무거나라고 하지 말고 좀 골라보세요!
이러다 시간만 간다고요!



순간 그 장소에 있던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서로에게 선택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선택의 순간을 이렇게 계속 누군가에게 미루다 보면 어느 날 취향이 사라진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 없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간혹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게 될 때, 나는 리뷰가 많은 상품을 고르고는 한다.

사고 싶은 상품이 있는데 아무런 리뷰가 없다면 당연히 망설인다. 신작 영화를 예매하는 것도 평론가나 유튜버의 해설을 보고 판단할 때가 많았다.


결국 나는 리뷰가 많은 상품을 고르는 선택을 하기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초기의 선택을 미뤄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내 취향 혹은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재미없는 영화, 맛없는 메뉴, 어울리지 않는 옷, 성능이 그저 그런 가전들…….


따지고 보면 그 모두가 일생일대를 걸만한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많은 타인의 취향과 마주할수록 많은 것들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 좀 어떤가. 그래도 괜찮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막심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닌 이상, 다르거나 이상할 수는 있어도 틀린 취향이란 없으니까.


별것 아닌 것들에 움츠러들지 않을수록 나는 내가 바라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라는 데로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글. 제로위크 / 그림. 홍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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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종이밴드 직업출간작가
따뜻하고 맛있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제로위크(글) + 홍양(그림) jong2b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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