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손주 봐주는 날

by 이종덕

오늘은 손주 봐주는 날.


지난 주말 딸이 세미나 참석과 강의가 있어서 손주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은 태어나서 세돌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고 나하고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입니다.

온종일 손주를 실컷 보게 되었다는 기대와 얼마나 시달릴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습니다.

나와 함께 있으면 엄마를 찾거나 칭얼거리지도 않고 잘 놀기는 하지만 얼마 전부터 할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존재이고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사람이란 것을 눈치채어서 평소에 원하던 것이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구 요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놀아 주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며, 조립식 장난감을 잔뜩 사기도 했습니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이 녀석이 낮잠을 좀 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세라 졸려서 눈을 비비면서도 절대로 잠을 자질 않더군요.

손가락에 잘 잡히지도 않는 조립식 장난감의 조그만 조각들을 설명서를 보아가며 안경을 썼다 벗었다.. 조립하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머슴이 되었습니다. 잠시도 날 그냥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주인집 도련님의 마당쇠가 이랬을까요?

비스킷의 크림만 빨아먹고 침이 잔뜩 뭍은 과자는 나보고 먹으라고 합니다.


어쨌든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녁 무렵에 스케줄이 길어져서 아이를 데리러 오기 힘들겠다는 딸의 전화에 결국은 집에 데려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아이고 이놈아!
날 이렇게 막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

그래도 이쁘고 좋기만 하니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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