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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Sep 30. 2018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내 몸 안의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다양한 나이의 대중에게 강연하다 보면, 우리 몸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 여전히 생소한 단어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한 시간 남짓 이것이 인간의 생로병사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듣고 난 후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이크로바이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비만, 천식, 당뇨, 류머티즘성 관절염, 아토피, 천식, 치매, 자폐 등 다양한 질병이 마이크로바이옴과 깊은 연관이 있다. 너무 많은 질병이 관련되어 있어, 오히려 이 분야가 유사과학처럼 들릴 수도 있다. 만병통치약처럼 광고에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매년 발표하는 수천 편의 학술 논문은 미생물과 인간의 밀월관계가 사실임을 증언한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면서 흔히 ‘서구화’로 대변되는 급격한 생활의 변화를 겪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의 유전자는 거의 그대로 인 반면에, 우리 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미생물의 종류는 많이 바뀌었다. 미생물이 바뀌었으니, 우리 몸 특히 대장에서 하는 역할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이것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많은 질병을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보게 된 것이다. 충분히 먹고,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것이 결국 질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와 공생하는 ‘생태계’이다. 생태계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먼저 ‘공생’에 주목하자. 공생은 서로 주고받음을 통해 상생을 추구하는 관계이다. 우리가 무엇을 마이크로바이옴에 주고, 그 대가로 뭘 받는 것일까. 이걸 당장 속 시원히 다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차차 이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지만 공생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큰 불행과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건 미리 말을 해둬야겠다. 비만, 당뇨와 같은 대사 질환부터 자폐, 치매에 이르는 정신 질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질병이 바로 이런 공생의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마이크로바이옴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도 다르고, 과거의 나와도 다르다. 재미있게도 나 혼자가 아니라, 미생물 친구가 같이 산다는 것이 내 삶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가져다준다. 이 친구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같이 잘살아 보려고 노력한다면, 앞으로 내가 걸릴 수도 있는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바이옴 전도사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성을 굳게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게이츠가 제작한 저자 에드 용과의 대담. 




오늘은 첫날이니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팩트체크부터 시작한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팩트체크’


–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원


마이크로바이옴은 다양한 미생물 종류로 구성된다. 이들은 세균(박테리아), 고세균(아케아), 균류(곰팡이류)와 원생생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여기에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인 존재인 바이러스까지 포함한다. 우리 인체에는 이 다섯 가지 종류의 미생물이 모두 살고 있다. 이 중에서도 세균이 가장 많고 중요하다. 그래서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은 세균에 대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 마이크로바이옴의 개체 수


마이크로바이옴의 개체 수는 우리의 세포 수를 능가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70kg 무게의 성인을 기준으로 미생물의 수는 대략 38조 개, 사람의 세포는 그보다 20% 정도 작은 약 30조 개다 (논문).


물론 이처럼 큰 수를 정확히 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이 사람보다 10배나 많은 세포로 되어 있다”라는 이전의 근거 없는 추정치가 이번에는 비교적 과학적 방법으로 업데이트된 셈이다. 


– 마이크로바이옴의 무게


대략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무게는 200g 정도로 추정된다. 38조 개로 숫자는 많지만 무게가 이것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세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고 가벼운 세균의 특징 때문이다.


– 마이크로바이옴의 고향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은 크게 잠깐 왔다가 몸 밖으로 나가버리는 ‘나그네’와 계속 몸속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 주민‘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 발효의 주방장인 유산균(젖산균)은 우리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능력자이지만, 나그네 형에 속한다. 반면에 이름이 좀 생소하겠지만 지금 내 대장 생태계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피칼리박테리움(Faecalibacterium)은 그야말로 터줏대감인 주민형 세균이다.


분명 태어날 때만 해도, 모든 사람은 거의 무균상태로 깨끗하게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럼 이런 주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마이크로바이옴을 이루는 미생물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곳으로부터 몸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 이 순간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에 있을 수도 있고, 같이 사는 가족, 반려동물 그리고 오늘 만졌던 모든 물건으로부터 세균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니 지금은 한동네에 살고 있지만 내 몸속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원들은 모두 고향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세균은 작년에 갔던 인도 뉴델리에서 히치하이크했을지도.


– 마이크로바이옴과 인간의 더불어 살기의 역사


최근 많은 연구 결과는 우리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절대적인 역할을 여러 측면에서 증명하고 있다. 인간과 미생물은 매우 친밀한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프리카 야생 침팬지와 고릴라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현생인류와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과 세균의 공생은 최소 천오백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논문).


공통 조상도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함께 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에는 고스란히 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


마이크로바이옴은 도대체 우리 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들도 우리처럼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매일 출퇴근 지하철에서 시루 안의 콩나물 같은 우리의 모습도 좁은 대장에서 꾸역꾸역 모여 있을 30조 마리의 미생물에게는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닐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피부, 구강 등에서도 발견되지만, 숫자로 보면 대부분이 대장에서 살고 있다. 대장은 일종의 닫힌 생태계이므로, 마이크로바이옴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소화하지 못해서 남은 음식물과 우리가 직접 만들어 주는 점액질 같은 물질이 이들의 먹이가 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들이 무얼 먹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뱉느냐는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천 가지가 넘는 다양한 물질을 만드는데 이것이 대장벽을 통해 우리 핏속으로 들어온다. 다음에는 이 고속도로를 타고 간, 뇌 등 어떤 장기에도 쉽게 다다를 수 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연구를 시작했기에 기다려 보면 하나씩 밝혀질 사안이다.


또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한 활동은 우리 면역계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훈련이 잘 못 이루어지면,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아토피, 천식, 알레르기, 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 의외로 자가면역질환이 그 종류가 많다. 모두 식생활의 서구화와 위생이 좋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면역계를 잘 못 가르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며


미생물과 인간의 공생 관계는 너무나 복잡해서 매년 발표되는 수천 편의 학술 논문으로도 극히 일부만 설명된다. 수많은 정보의 파도 속에서 일반 대중이 과학적으로 잘 정리된 적절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 블로그를 통해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벤처기업 ’천랩‘을 창업해서 현재도 주요 임원으로 연구개발에 참여 중임을 밝힌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 당뇨, 아토피, 크론병, ADHD, 치매, 파킨슨, 암 등 많은 질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네이버 카페 <바이크로바이옴식탁>에서 자세히 원리과 실천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 #장내미생물 #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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