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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Oct 16. 2018

조금 더 더럽게 삽시다-위생의 역습

위생가설, 적당히 더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

콜레라는 물을 통해 전염되는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다. 수만 년 동안 우리를 괴롭혀왔고, 지금도 최소한 수백만의 환자가 전 세계에서 매년 발생한다.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 콜레라는 세균의 일종이다. 이놈들 백만 마리 정도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설사를 일으켜 극단의 탈수로 환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고전문학 작품에도 간간이 등장하는 ‘콜레라’ 병은 이렇게 걸리게 된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세균을 사랑하는 미생물학자의 입장이니 이해 바란다) 콜레라균의 전략은 간단하다. 일단 숙주인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오면, 장에서 열심히 증식한다. 그다음엔 몸 밖으로 나가려 한다. 다른 숙주로 옮겨 타야 하니까. 가장 좋은 방법이 숙주가 설사를 해주는 거다. 그것도 많이, 또 자주. 원래 인도 아대륙 벵골만이 고향인 이 세균은 이렇게 인간이라는 숙주에 제대로 적응했다. 이놈들에겐 운이 좋게도 한 군데만 머물던 인간이 말을 타더니, 배로 대양을 건너고,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고, 이제는 하늘을 날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콜레라 세균은 이렇게 숙주와 함께,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도 인도, 방글라데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콜레라와 함께 일상을 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상 하수도가 없어, 콜레라가 쉽게 퍼질 수 있는 방글라데시의 강 (source: Flickr.com)


그럼 이렇게 성공한 콜레라균이 왜 한국에서는 힘을 못 쓸까? 정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1910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총 11차례의 콜레라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 환자만 무려 3만 명 이상이었고, 사망률은 60%가 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호환 마마 못지않은 공포의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그럼 왜 지금 우리나라엔 콜레라가 유행하지 않을까? 그건 바로 숨 쉬는 공기처럼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 때문이다.


대전시의 현대식 하수처리장 (source: 굿모닝 대전)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가 좋아졌지만, 그중에서도 깨끗한 식수의 공급이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마침 2016년에 우리나라 남부 바닷가에서 네 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지만, 환자로부터 배출된 콜레라균이 다른 사람이 먹는 물로 갈아탈 수 없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상하수도 시스템 덕에 추가적인 전염은 없었다. 삶의 질이 높아짐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깨끗한 물, 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은 그런 물을 나와 가족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면 그것보다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예전보다 분명히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잘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면서 전염병은 줄었지만, 예전에 못 보던 질병이 하나둘씩 우리 주변에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지금은 거의 창궐하고 있는 아토피는 1990년대부터 야금야금 그 환자의 수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만 7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천식과 자폐도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환자의 수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모두 필자가 어릴 때는 쉽게 보지 못했던 희소 질환이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쾌적한 집에서, 더러운(?) 흙은 멀리하고 사는 우리의 향상된 삶이 혹시 이런 질병의 발생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위생 가설’이라고 부른다.


1989년 영국의 스트라찬 박사가 처음 제시한 위생 가설에 의하면 (논문), 유아기에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좀 더 자연 친화적인 더러운 집에서 살면서, 나이 많은 형제, 자매와 신나게 흙이나 개울에서 뛰어놀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미 아토피가 만연한 영국의 문제를 적절히 설명하려는 그럴싸한 가설이었다. 청결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이 문제라는 취지에서 위생 가설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이 가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하나 같이 너무 깨끗이 살지 말고, 자연의 미생물과 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지적한다. 요즘엔 흙바닥이 아닌 어린이 놀이터가 많다. 어떤 아파트는 자랑스럽게 놀이터 흙을 살균한다고도 한다. 다른 곳은 흙을 들어내고 우레탄으로 깔끔하게 바닥을 시공했다.


평화로운 놀이터 같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토양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는 아주 적다. (source: 수원일보)


그나마 이런 곳은 야외에 있으니 나은 환경이다. 실내 어린이 놀이터는 자연 상태의 미생물과는 거의 절교를 선언한 환경을 제공한다. 위생 가설의 원인 제공자가 미생물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래서 위생 가설과 관련된 최근 연구 중에 중요한 것 하나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바바라 레허만 박사팀은 위생 가설의 원인을 동물 실험에서 찾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지금 우리처럼 과거보다 아주 깨끗하게 위생적으로 사는 생쥐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미국 국립보건원처럼 세계적인 연구기관에는 반드시 실험용 생쥐 사육시설이 있다(서울대를 비롯한 한국의 주요 연구기관에는 모두 이 정도의 시설은 있다). 여기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깨끗한 환경에다가 10배를 곱한 수준의 위생상태를 생각하면 된다. 이 동물의 장에는 사람처럼 미생물이 가득한 것은 맞지만, 병원균이 혹시 나 있을까 봐, 틈만 나면 검사를 한다. 물론 이 생쥐에겐 바깥나들이는 절대 불가. 집안의 화초처럼 한 방에서만 곱게 자란 생쥐이다. 연구팀은 비교를 위해서 이제 자연 상태에서 자란 생쥐를 구하고자 했다. 사람도 이런 조건에 맞는 분들이 있기는 하다. 바로 2만 년 전의 우리 조상과 비슷한 방법, 즉 수렵 채집으로 사는 종족이다.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 아직 일부가 있다. 자 이제, 젊고 발 빠른 연구원들이 나설 차례. 국립보건원이 위치한 메릴랜드주도 다른 미국의 주처럼 자연공원이 많다. 연구원들은 이런 공원에서 ‘자연 상태’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는 야생 생쥐를 생포했다.


연구팀은 야생 쥐와 실험용 쥐의 장내 미생물의 조성을 검사했다. 이를 위해선 생쥐 대변에 포함된 미생물(대변의 약 1/3이 미생물이다)의 DNA를 추출해서, 그 염기서열을 밝히면 된다. 이 방법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수십 년 전부터 대를 이어 화초처럼 자란 실험실 쥐와 들판에서 방금 잡은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 조성은 예상대로 상당히 달랐다. 특히 실험용 쥐는 세균 종 다양성이 야생 쥐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가 과연 건강이나 질병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연구팀은 다행히 아주 비싼 실험용 생쥐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무균 생쥐이다. 이분들은 위생상태가 좋은 일반 실험용 쥐와는 차원이 다른 최첨단 시설에서 태어나고 키워진다. 날 때부터 미생물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 그 상태가 유지된다. 완전히 멸균된 식사를 하며, 공기 중의 미생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공기필터가 24시간 돌아가는 방에서 사육된다. 장을 비롯한 몸 안에 미생물이 전혀 없는 위생의 지존인 환경에서 키우다 보니, 돈이 엄청 많이 든다. 이런 시설이 없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최근에야 도입되기 시작한 7성급 쥐 호텔이다.


무균 생쥐 사육시설은 7성급 호텔 이상의 청결함을 유지한다. (source: PNAS)


연구팀은 이 귀한 무균 쥐에 실험용 쥐와 야생 쥐의 마이크로바이옴,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변을 각각 먹였다. 사람은 이렇게 하기 어렵지만, 다른 친구의 대변을 스스로 먹는 생쥐에게는 크게 미안한 일은 아니다. 자 이제 똑같은 무균 쥐의 일란성쌍둥이 중 절반은 실험용 쥐의 단순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야생 쥐의 것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엔 똑같은 환경에서 같은 먹이를 먹일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 두 그룹의 무균 쥐의 차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 이외에는 없다. 가장 비교하기 좋은 연구는 이렇게 디자인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 두 그룹 사이의 생리적인 차이를 알아보자. 연구팀은 먼저 면역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생쥐에게 치명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감염을 시켜보았다. 바이러스 감염 후 12일째에 실험용 쥐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진 무균 생쥐 중 80%가 폐사했지만,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한 무균 쥐는 90% 이상이 살아남았다 (아래 도표). 야생 쥐의 건강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을 크게 키워준 것이다.


야생 쥐 마이크로바이옴은 무균 생쥐에게 인플루엔자 저항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대장암을 발생시키는 발암 물질을 이 두 그룹의 무균 쥐에게 투입했다. 일반적인 실험용 쥐에서는 이런 처리를 하면 암이 잘 생긴다. 하지만 야생 쥐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받은 무균 쥐는 상대적으로 암의 발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못 믿겠으면, 암 덩어리의 숫자를 직접 세보시길 (아래 그림).


야생 쥐 마이크로바이옴은 무균 생쥐에게 대장암에 대한 저항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암과 면역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사실 우리 몸 안에 구석구석에선 매일 암세포가 발생한다. 이놈들이 나쁜 암 덩어리로 자라기 전에 사전 차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몸 면역 세포가 하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반란을 막는 중요한 역할이다. 물론 밖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추적해서 죽이는 역할도 한다. 과연 야생 쥐의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이 어떤 방법으로 무균 쥐에게는 없던, 이런 강력한 면역력을 선물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워낙 많은 세균 종과 다양한 사람의 면역 세포,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카카오톡 역할을 하는 수많은 화합물을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한참 뒤에 이 퍼즐을 우리가 다 푼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진 말자. 생쥐와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상당히 다르니까.


여기 소개한 연구는 앞에서 이야기한 위생 가설의 작용 기작을 설명해준다. 실험용 쥐처럼 너무 깨끗한 곳에서 태어나 자라면, 자연의 미생물과 교감이 떨어진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수록 우리의 면역계는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2만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마이크로바이옴은 2만 년 전 우리 선조와는 너무 다르다. 지난 천만년 이상 진화적으로 잘 지내오던 인간과 미생물, 두 진영이 오늘날 대장 안에서는 큰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위생적인 환경이나 너무 소화가 잘 되는 무른 음식들에도 잘 적응하는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필자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세대는 절대 아니고, 한 500년쯤 후에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가 틀렸다면 그때 이메일로 알려주시라. 저세상에서나마 공진화의 결론을 꼭 알고 싶다.


햄버거, 고기, 탄산 설탕음료, 완전히 도정된 빵과 흰쌀밥으로 대표되는 서구화된 식단과 제왕절개 그리고 항생제 남용, 이 세 가지가 과학자들이 손꼽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망치는 요인이다. 세 가지 모두 2만 년 전의 우리 조상에게는 없던 것들이다. “그럼 손도 씻지 말고 살까요?” 필자의 대중강연 후에 많은 청중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만약 여러분이 등산했다거나 자연 속에서 산책했다면, 그곳의 미생물을 받아들일 시간을 좀 주어도 좋다. 하지만 사람 피부의 세균이 대부분일 지하철에 있었거나, 특히 항생제 내성 세균이 득실거리는 병원에 있었다면, 바로바로 손을 씻는 것이 좋다. 외국에는 일부러 흙을 먹는 극단적인 자연주의자도 있다. 흙에도 드물지만 병원균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미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구축된 성인의 경우엔, 새로운 미생물을 받아 드리는 것보다는 이미 내 안에 자리 잡은 미생물 숲을 제대로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생물 먹이, 즉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사실 이것이 매우 어렵다. 좋은 것만 가려 먹으시라. 첨단 과학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로 결론이 가서 여러분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먹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아래 그림에서 실험용 쥐와 필자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이 사는 주거 공간의 유사점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이 글에서 소개한 연구의 논문 원문은 여기에 

미국 연구팀이 자상하게 동영상도 만들어 놓았다. (아쉽게 한글 자막은 없다.)




자신의 장내미생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미 천명이상의 시민이 참여 중인 "시민과학프로젝트"에 참여해보시길 권한다. 무료이며,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과학 발전에 참여하고,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도 알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다음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 https://www.smilebio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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